오죽하면 다리를 막았겠는가?

  • 입력 2013.09.06 14:09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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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막았다. 3일 서울역 앞 광장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참석차 상경한 농민들이 한남대교 북단 6개 차로를 모두 가로막았다. 수십여 대의 버스에서 2000여명의 농민들이 내렸다. 기습시위였다. 도로점거는 약 1시간 남짓 지속됐다.

꽉 막힌 도로에 불편을 느낀 몇몇 시민은 인도로 다리를 건넜다. 삿대질이 오가기도 했다. 고함을 외치기도 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농민들이 왜 다리를 막아섰는지 그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더 이상 주름질 때가 없는 늙은 농민들이 가을 햇살에 익어갈 곡식을 두고 서울로 상경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벼랑 끝에선 농민들의 한 맺힌 절규는 그저 소음일 뿐, 교통체증을 초래한 점거행위에 대한 분노만 존재할 뿐이었다.

농민들은 한남대교 난간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고추, 마늘, 벼 등 구슬땀 흘려가며 생산한 농산물을 매단 채 한강으로 펼침막을 던졌다. ‘쌀 목표가격 23만원’, ‘농가부채 해결하라’, ‘송아지 생산안정제 복원하라’, ‘농민도 살고싶다’ 등이 적힌 현수막 50여개가 강바람에 펄럭거렸다.

농민들은 외쳤다. 개방농정의 폐해 탓에 진정 내란이 일어날 곳은 농촌이라며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하라”, “한중FTA 중단하라” 등을 거듭 외쳤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우리 민족이 가장 널리 재배하고 소비하는 기초농산물을 국가가 수매, 비축하고 방출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농업·농촌의 위기,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농업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교통체증 유발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자신에게 불편함을 초래한 행위만을 언급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는 독자제보의 사진 한 장을 내보이며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농민 시위로 한남대교 30분 不通…시민들 도보로 건너’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기보다 행위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그래서였을까. 경찰청이 4일 다리를 막고 시위한 농민들에 대해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감히 교통을 차단한 괘씸죄라는 것이다. 당연지사, 농민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9.3 전국농민대회를 주최한 전국농민회총연맹이 같은 날 성명을 발표했다. 제목은 ‘오죽하면 다리를 막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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