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

  • 입력 2013.09.06 13:58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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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어지간해선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런데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그것도 넝쿨이 아주 실한 상태에서 메꽃 같은 나팔을 여럿 매달고 있다.

언뜻 생각은 50년 전으로 달려간다. 60년대 삼남은 물론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던 어느 해 모를 내지 못해 호미로 논바닥을 긁으며 모를 낸 해가 있었다. 그때는 분식과 혼식이 강요될 만큼 식량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가뭄은 식량기근으로 이어지고 굶주림을 몸소 체험한 세대들은 걱정이 태산과 같았다. 가족이 주리기라도 하면 그것은 죽음과도 연결된 것이기에 모두가 근신하고 둠벙에서 물을 퍼 나르는 등의 노력으로 농사를 지었다.

고구마도 그렇게 심었다. 꾹꾹 눌러 심고 물을 퍼 날라 뿌리고 풀을 베어다 이랑을 덮었다. 그렇게 간신히 뿌리내린 고구마가 꽃을 피웠다. 아이들이 주릴까봐 비한방울 떨어지지 않아 딱딱해진 이랑을 호미로 파내며 고구마를 찾지만 고구마는 제대로 매달리지 못했다.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의 구시렁대는 말은 “나라가 망할 징조야”였다. 뭘 보고 그러나 했는데 어머니는 고구마꽃을 보신 것이다.

아! 고구마꽃을 난 그때 처음 보았다. 고구마는 평상시엔 덩이줄기에서 순이자라 번식하지만 덩이줄기가 부실해질 정도로 한발이 들면 제 종자를 퍼트리려고 꽃을 피운다.

한발이 들면 식량이 부족해지고 식량이 부족해지면 민심이 흉흉해지고 그러다보면 도둑떼가 극성이고 유랑자들이 발생한다. 봉건시대의 사회변혁 시도는 그럴 때 나타났다. 그러니 어머니의 유추는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다. “고구마꽃이 피면 나라가 망한다.”

시절이 하수상하다. 고구마 꽃을 보니 꼭 그렇다. 그것도 가뭄 때문에 핀 것도 아니니 더욱 수상하다.

시절이 수상하게 된 것은 뭐라 해도 정치의 부재 때문이다. 정치가 없는 세상은 희망도 없다. 희망을 요구하는 대중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면 그 공간을 메워줄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이 ‘내란예비음모’다. 이것 하나로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버린다. 다른 말은 족쇄가 될 뿐이다. 그 족쇄는 마녀사냥으로 이어진다. 희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마녀를 화형시키는 형장이 자리한다.

바벨탑을 건설하던 사람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탑을 완성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늘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저주를 내린 것이다.

수많은 지혜들이 모여야 비로서 유유히 흐르는 멋진 강이 만들어진다. 말은 지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것과 다르다고 말로 취급하지 않는 것은 인류문명에서 석기시대나 가능한일이다.

말인지 막걸린지 알 수 없는 말, 일방통행식 말만이 말대접을 받는 세상에 농업부문도 다르지 않다. 농업을 구하자. 농민들을 살려내자. 아무리 소리쳐도 쳐다보는 이 없다. 방송도 신문도 일언반구 하지 않는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나 ‘쌀개방문제’도 그들에게는 강 건너일이고 관심사가 아니다.

역사는 우리를 무수히 다그친다. 침묵하지 말고 일어서라고, 일어서지 않으면 세상의 변화는 없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또 다른 ‘내란예비음모’는 언제 어디에서든 발호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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