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에는 없는 한양불고기

  • 입력 2013.08.26 10:01
  • 기자명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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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초등학교를 입학했지만 군인이라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서울로 전학을 했다. 서울과 첫 인연을 맺은 곳은 정릉의 청수장 부근이었고 나는 어머니를 따라 아주 가끔 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동으로 나들이를 했다.

그때는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계라는 경제활동(?)을 통해 저축을 하던 때였고 그때마다 큰 음식점에 모여 평소에는 먹지 못하던 음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내 나이 열 살, 그때 그곳에서 처음 먹어본 소고기로 요리한 불고기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한 동안은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외식메뉴는 바로 그 불고기였는데 요즘은 서울엘 가도 그런 불고기를 파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의 삶과 기억이라는 부제를 달고 따비출판사를 통해 나온 <서울을 먹다>라는 책에도 그 불고기의 이야기는 없어서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없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무척 아쉽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그랬듯 우리 집에서 소고기를 먹는 일은 생일에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통해서가 거의 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어머니는 소고기불고기를 대신해 고추장에 빨갛게 버무린 돼지고기불고기를 아주 가끔 소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처럼 해주셨다.

돼지고기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던 시절이라 풋고추와 양파, 더러는 애호박 같은 것을 잔뜩 넣고 볶은 돼지불고기를 먹고 남은 진득한 국물에 밥을 비벼 설거지한 것처럼 먹어치우던 기억을 자주 떠올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주에서 어린 시절의 음식을 통해 얻던 위로와 포만감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음식을 만났다. 한양에는 없고 전주에만 있는, 소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볶아 먹는 이른바 한양불고기가 그것이었다.

호박이나 양파 등만을 듬뿍 넣고 볶던 우리 집의 돼지불고기와는 달리 전주의 특산물인 콩나물을 한 바구니 넣고 하는 것이었다. 한양불고기라는 간판을 걸고 팔기 시작한 식당의 음식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으리라 짐작되지만 지금은 일상적으로 해먹는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전주에서는 그런 돼지고기 요리를 한양불고기로 부른다.

한양불고기는 콩나물의 아삭하고 들큰한 맛이 돼지고기와 어우러져 제법 맛깔나기까지 하여 참 좋다. 전주의 콩나물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사실 콩나물을 듬뿍 넣은 한양불고기보다는 해장용으로 먹는 콩나물국밥이 더 유명하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이 유명한 것에는 콩나물국밥이 맛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전주의 콩나물이 다른 지역의 콩나물보다 칼슘과 무기질이 많다고 하여 사람들이 전주의 콩나물에 주목을 하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한방에서 황두아(黃豆芽)라 불리는 콩나물은 몸을 차거나 덥게 하지 않는 음식의 재료로 알려지고 있다. 맛은 달고, 간장의 해독하는 역할을 돕고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며 체내 수분조절을 원활하게 하는 등의 효능이 있어 숙취를 날려버리는 해장의 식재료로 사랑받는 까닭이 있다.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여름이 가나보다. 이런 날 저녁에는 마당에 자리 마련하여 숙주나물 들어간 빈대떡 대신 콩나물전이나 한양불고기 한 접시 앞에 놓고 모주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해도 좋겠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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