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에게 정의의 여신은 존재하나?

  • 입력 2013.07.05 14:27
  • 기자명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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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무더웠던 목요일. 전주원예농협의 한 농민 조합원이 기자를 만나기 위해 전주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올라왔다. 지난해 전주원협 공판장의 고의 유찰로 인해 멀쩡한 1,500만원 상당의 부추가 상하는 피해를 입은 농민 부부 내외였다.

전주원협 공판장은 왜 이 조합원의 부추를 유찰시켰을까. 조합원의 추측은 지난해 대의원총회에서 선취매매를 하지 말라고 발언해 조합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보복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전주원협 공판장은 농안법상 의무인 판매 행위를 거부한 것은 명백하다. 이 때문에 전주시는 전주원협에 주의조치하고 해당 경매사에게는 15일의 업무정지 처분을 했다.

그렇다고 썩어버린 부추가 되살아나진 않는다. 억울함에 이 조합원은 검찰과 경찰에 형사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지만, 검찰은 각하해버렸고 지난달 25일 제기한 민사소송은 패소했다.

이 부부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패소하자, 그 억울함에 기자를 찾아와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며 도움을 청하러 이 먼 서울까지 찾아온 것이다.

부모님 나이쯤 돼 보이는 이들 부부에게 1,200원짜리 음료수를 얻어 마시면서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라 해봐야 기사를 쓰는 것과 아는 변호사 사무실을 소개해주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왜 전주시가 전주원협에 불법 행위를 지적하며 행정처분을 했음에도 이 부부는 민사소송마저 패소했을까. 전주원협이 농안법을 분명히 어겼음에도 검찰은 왜 형사상 처벌을 할 수 없었을까.

이들 부부가 끌고 온 자동차의 네비게이션에 변호사 사무실 주소를 쳐주고는 “그 전주시가 행정처분도 했는데 변호사 만나면 무슨 수가 있지 않겠어요?”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정의의 여신’은 한손에는 저울을,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맹인이라 한다. 저울은 엄정한 정의의 기준, 칼은 정의를 실현하는 힘, 맹인인 이유는 사사로움을 떠난 공평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만난 이들 부부의 사정을 듣고 법이 정의롭지도, 불의를 처벌할 힘도, 공평함도 갖추지 못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청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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