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농민의 만남을 허하라

기자수첩

  • 입력 2013.06.21 09:04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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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심는다. 긴 바지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리고 물 댄 논에 두 발로 딛고 서 모를 심는다. 30년 경력 농사꾼이 못줄을 잡고 못줄에 맞처 일렬로 선 이들이 차근차근 모를 심는다. 농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어이’하는 외침에 허리를 펴고 그 사이 못줄이 움직이고 다시 허리를 구부린다.

모를 심는 손끝에 정성이 오롯이 담긴다. 모를 심는 만면에 미소가 머문다. 그저 나 하나 먹고 살자는 마음이 아니어서, 그런 마음 이곳저곳에서 길어 올려 함께 살자, 우리끼리만 말고, 북녘에 있는 농민들과 동포들과 함께 먹고 살자, 하는 마음에 간절히 모를 심는다.

오랜 시간 대화가 끊기고 길이 막혀도 올 가을 추수 때는 만날 수 있으리라, 풍년 든 남녘의 쌀을 북녘으로 보낼 수 있으리라, 그런 희망 품고 매년 심어 온 통일쌀.

 당국은 ‘급’이 맞지 않다, 만남에 생뚱한 어깃장을 놓아도 농민에겐 그런 ‘급’ 혹은 ‘격’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으니 만나기만, 만날 수만 있다면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올 가을 금강산에서 만납시다. 추수의 기쁨을 만나서 나눕시다. 통일농업, 민족농업이란 것도 결국 만나야 할 수 있는 것. 남과 북의 농민이 만나 햇쌀로 지은 밥을 먹읍시다. 막걸리 한 잔 거하게 들이키며 평화를 이야기합시다. 하여, 통일쌀이다. 전국 팔도에서 농민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통일의 모를 심는다.

6.15남북공동선언 13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남북농민 추수한마당’을 올 가을 금강산에서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실무접촉도 북측 조선농업근로자동맹에 제안했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남북농민들이 만들어 가자는 선언이다.

이제 정부가 답할 차례다. 전국 팔도에서 통일쌀, 통일감자, 통일콩 등을 심어 키우는 농민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남북농민들의 만남을 허락해야 한다.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현은 어렵지 않다. “밥이 곧 평화”라고 한다. 올 가을 금강산에서 먹는 밥에서부터 평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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