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는 나면서부터 크는 거야”

사진이야기 農․寫 4시간 진통 끝에 숫송아지 태어나다

  • 입력 2013.06.21 09:01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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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를 밴 어미소가 우사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힘줄이 툭툭 불거진 머리를 우사의 철골 구조물에 비비는가 싶더니 이내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린다. 앞발과 뒷발을 좌우로 쭉 내뻗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일어나 우사를 돌아다닌다. 송아지를 낫기 위해 3시간째 진통중이라는 함용상(52,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장원리)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 닮았다. 어미소가 갓 태어난 송아지에게 다가와 젖은 몸을 핥아주고 있다.
소는 사람과 비슷하다. 새끼를 배고 열 달을 품어 세상에 내놓는다. 통증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 출산에 익숙(?)한 소는 진통 한 두 시간 여 만에 송아지를 낫기도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 소는 격한 울음소리 하나 없이 반나절 동안 진통만 하기도 한다.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는 어미소만큼 애가 타는 것은 농민이다. 송아지를 낫기까지 몇 시간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집안의 어른인 한규숙(82)씨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애 낳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게 없다”며 측은한 눈으로 어미소를 바라볼 뿐이다.

진통이 4시간여에 다다르자 송아지의 앞발이 태반과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미소의 숨 고름에 태반은 눈에 보이다가도 사라지기 일쑤다. 이윽고 함씨와 우성하(52)씨가 나섰다. 송아지의 앞발이 어느 정도 나오자 줄로 묶어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오랜 진통 끝에 사산하는 경우도 더러 있어 이들의 손길은 더욱 조심스럽다. 

‘하나 둘 셋’ 기합에 맞춰 줄을 당기니 태반이 터지며 송아지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짚풀을 깔고 그 위에 이불을 펼쳐 송아지를 뉘여 놓는다. 송아지의 코에 귀를 갖다 대 숨을 쉬는 지 확인하고 예방약을 놓고 나서야 한시름 놓는다. 숫송아지다. 애 탄 농민들은 안도의 소주 한 잔으로 출산의 기쁨을 누린다. 그 사이 어미소는 송아지에게 다가와 젖은 몸을 연신 핥아주며 열 달 만에 만난 어미와 새끼의 정을 나눈다.

세상의 빛으로 인도된 지 한 시간여 남짓 흘렀을까. 제 힘으로 일어선 송아지는 어미의 젖을 찾아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초유를 먹기 시작했다. 함씨가 말했다.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크는 거야.”  

▲ 어렵사리 일어선 송아지가 한참을 헤매다 초유를 먹기 시작했다. 이제 잘 크는 일만 남았다.

▲ 소주 한 잔에 삶은 감자, 농민들이 출산의 기쁨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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