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마을 12 회

최용탁 장편소설 '들녘'

  • 입력 2013.05.26 10:27
  • 기자명 최용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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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따라 찬바람이 몹시 불어댔고 일기예보에서는 체감기온이 영하 십오 도나 된다며 속옷을 챙겨 입으라느니, 감기를 조심하라느니 하며 백성들 걱정이 자심하였다. 물론 날마다 뉴스를 뒤덮는 것은 선거 이야기였다.

준석은 선거권이라는 게 생긴 이후로 줄곧 야권 쪽을 선택해 온 터라 이번에도 진즉에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 거개가 준석과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과, 아무리 입씨름을 해봐야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면소재지에 나가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꽤나 핏대를 올려가며 선거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마을에서는 거의 입에 올리는 경우가 없었다.  

  겨울이 되고 선거가 가까워오자, 회관 텔레비전은 노상 보던 드라마 대신 처음 보는 종편 채널이 틀어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주로 남자들이 틀어놓는 경우였는데 처음에는 연속극을 보지 못해 툴툴거리던 아주머니들까지 서서히 종편 보는 재미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종편 시청률이 형편없다는 뉴스를 들어 알고 있던 준석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 삽화 박홍규 화백
어느 채널이나 돌리는 데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자칭 타칭 정치평론가들이란 자들이 나와 종주먹을 흔들어대며 거품을 무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이 낯설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 따위 속이 들여다보이는 편파 방송에 놀아날 사람들이 얼마나 되랴, 하며 준석은 속으로 은근히 자신이 지지하는 야권 후보가 될 거라고 믿었었다. 마을에서는 작년에 하우스 농사를 하겠다며 귀농한 경태와 젊은 축 서넛이 준석과 같이 야권 표였다. 

  정선택이 차를 빌자고 한 날에 준석은 당연히 아침 일찍 서두를 줄 알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십년을 넘게 탄 탓에 추운 날에는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트럭의 배터리를 전날 헌 옷가지로 감싸놓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댓 발이나 떠오르도록 연락이 없었다. 열한 시가 넘어서도 무소식이어서 준석은 부녀회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즘심 먹고 한 서너 시쯤 돼서 나갈 거유. 날두 추운데 미리 가서 떨 거 읎잖유.”
  돌아오는 소리가 맹랑했다.

  “뭔 소리랴? 장 보러 가는 거 아녀? 근데 서너 시라니? 요새 같이 해짧은 날에 파장할 시간이구만.”

  준석은 부녀회장과 대충 말을 놓고 지내는 처지였다. 남편인 태구가 후배이기도 하고 부녀회장은 태구와도 열 살이나 차이가 나서 막내 여동생보다도 어렸다. 그래도 엄연히 남의 부인인 터에 말을 놓기는 어려운 사이지만 워낙 그녀가 털털하고 때로는 준석에게 먼저 반말 비스름하게 농을 던지기도 하는지라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호호, 몰르구 있었나벼. 장 보러 가는 기 아니구, 오늘 다섯 시에 바끄네가 온다잖여요. 영주 엄마가 얘기 안 혀유? 오늘 우리 동네 사람덜이 다 거기 가기루 했는데.”

  준석은 정선택에게 속았다는 기분보다도 아무 말이 없던 아내 정숙이 더 괘씸했다.
  “여보, 오늘 바끄네 오는 유세에 간다는 거 당신도 알았다며? 어째 나한테 그 말을 안 혔어?”

  며칠 전에 눈길에 미끄러져 발이 삔 영주의 발목에 찜질팩을 붙이고 있던 정숙에게 화를 눌러가며 묻자 대답이 천연덕스러웠다.

  “내가 얘기했으면 당신이 가자고 했을 거유? 내가 전버텀 얘기 안 혀요? 난 바끄네 한 번 보구 싶다구. 왜 꼭 당신 하는대루만 따라가야 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처음으로 아내와 생각이 엇갈리고 있었다. 언제나 준석이 선택하는 대로 따라주던 정숙이 뜻밖에 자신은 여성 대통령을 뽑겠다고 먼저 선언을 했던 것이었다. 준석은 기가 막혔지만 차근차근 설명하면 다시 마음을 바꾸리라고 믿었다.

  “이 소갈머리 읎는 마누리야. 지난 오 년 동안 겪어보구두 그런 말이 나와? 나라를 절딴내다시피 허면서 즤들끼리 왼갖 도적질을 다 해처먹는 꼴 봤잖여? 뇡민덜은 흑싸리 껍데기 취급도 안 허고, 뭔 물가 올르는 거에 범인 취급이나 허구 말이여. 당장 공약 내세운 거 봐.  뇡민덜은 우리나라에 읎넌 귀신으루 아넌지, 아예 말두 읎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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