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농정, 어디로 가려 하는가

  • 입력 2013.05.26 10:14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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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부가 들어선 이후 심상찮은 기운이 감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지난 2월 13일 농촌진흥청은 유전자조작작물을 옹호하기 위하여 관련 기업이 출자한 ‘농업 생명공학 응용을 위한 국제서비스(ISAAA)'의 클라이브 제임스박사를 초청하여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당연히 그 내용은 유전자조작작물의 미래가 밝다는 찬양 일색이었으며 우리나라도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정부주도로 유전자조작종자를 개발 중이며 상업화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흔히 글루탐산나트륨이라 알려진 엠에스지(MSG)가 소금보다 더 낫다고 말하고 한 공영방송에서 이를 보도하기가지 했다. 한술 더 떠 지난 4월 한 종편방송에서는 유기농산물이 일반농산물보다 미생물개체수가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하다는 방송까지 나왔다.

이 세 가지 내용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일찍이 모든 식품에서 그 성분이 차이가 없으면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여야 한다는 ‘실질적 동등성’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실질적 동등성은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당시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이 한결같이 해왔던 이야기다. 동물성사료를 먹여 키웠건 일반사료를 먹여 키웠건 그 소고기는 소고기일 뿐 이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사실 유전자조작농산물을 일반농산물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도의 실험과정을 거쳐야만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반인이 이를 눈으로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성분조차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유전자조작농산물은 일반농산물과는 달리 원래 그 농산물에는 없는 유전자조각이 더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런 미세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를 우려하는 것은 그 유전자조작을 집어넣는 과정에서 생겨날지도 모르는 미세한 변화가 결과적으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도 ‘실질적 동등성’은 이 정도의 유전자 차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성분 차이를 보고 판단하라고 강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위 조미료의 통칭인 MSG를 우려하는 것은 그것이 원래 천연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고기, 건어물, 해조류, 채소 등을 오래 끓임으로써 얻어지는 성분을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단시간 내에 얻어내고자 만들어진 조미료이기 때문이다. 그 화학적 구성성분이 동일하다는 것이 그것을 얻어내는 모든 과정을 동일시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즉, 오랜 시간 끓여 얻을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단시간 내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화학적 공정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실제 라디오방송에서 해당 교수는 MSG가 천연조미료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질문에 대해 천연조미료인 ‘셈’이라고 답했다. 이 역시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유기농산물과 일반농산물의 비교는 더하다. 단순히 미생물의 개체수만을 비교하면서 미생물의 개체수가 많으면 거기에는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도 많을 수 있기 때문에 미생물 개체수가 적은 일반농산물이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식의 결론은 그야말로 유기농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

적어도 방송에서 제대로 하고자 했다면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이라고 알려진 농법 내지는 법제도에서 정하고 있는 유기농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어야 옳다. 원래적 의미의 유기농이 현대사회에서 제도화된 유기농이 되면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즉, 화학농약 대신 미생물농약을 쓰도록 만들어진 법제도를 문제삼았어야 한다. 적어도 전통적인 의미의 생물학적 방제를 해왔던 우리 농업의 전통과는 달리 취급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하나의 ‘유기농’이라는 단어로 함께 취급하는 것 역시 ‘실질적 동등성’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실질적 동등성’은 다시 공장화한 농업, 농민이 아닌 기업의 농업, 먹을거리가 아닌 상품으로서의 농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생산하건 배만 부르면 된다는 논리가 최근 일련의 사건의 흐름 속에서 읽혀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새정부의 농정, 정말 농민을 어디까지 몰아붙일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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