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돈보다 생명을’

[사진이야기 農·寫] 폐업 위기에 놓인 진주의료원

  • 입력 2013.04.21 16:1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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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하나. 이갑상(79)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7마지기의 논을 물려받았다. 어릴 적부터 배운 것이 소로 쟁기 끌고 못 줄 잡고 씨 뿌리는 일이라 농사는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한 달에 두세 번씩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밀려 왔다. 협심증. 그 때마다 진주 시내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왔다. B, J, H 병원 등 참 많은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지만 이씨는 “겁이 나서 있지를” 못했다.

 

한 달에 최소 7~8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가 문제였다. 농사 지어 번 돈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에 쓸 수밖에 없었다. 진주의료원을 찾게 된 건 그때였다. 무엇보다 저렴한 병원비, 한 달에 10만원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고질병인 심장질환으로 병원 신세를 지은 지 어느덧 23년, 이씨는 그 세월 중 대부분을 진주의료원에서 보냈다.

지난 2월 경상남도가 진주의료원 폐업 결정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나 병원은 휴업에 들어갔다. 의사가 떠나고 환자도 떠났다. 그러나 이씨는 의료원을 떠날 수 없었다. 늘어날 병원비를 생각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곳에 누워서 죽을 것”이라는 말을 점점 많이 하게 됐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사람이 살아야 빚도 갚는 것 아니”라며 “배운만큼 배운 홍준표(경남도지사)가 그리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지난 17일 이씨는 진주의료원 8층 노인요양병원 복도를 운동 삼아 거닐었다. 사람이 떠나 휑한 복도였다. 8층에는 이씨와 같은 처지의 노인 16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농사일로 인해 폐업 저지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농민들을 천막농성장으로 불러들였다. 늦은 밤에서 이른 새벽까지 농민들은 천막농성장을 지켰다.
사연 둘. 어둠이 깔리고 진주의료원 간판이 불 밝힐 즈음, 의료원 정문 앞 천막농성장으로 진주시 농민들이 모여 들었다. 진주시농민회 김군섭(55) 회장과 면지회 농민들이었다. 지난 12일부터 10개 면지회가 돌아가며 천막을 지켰다. 이 자리엔 진주시 여성농민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진주의료원은 농민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농민들의 혜민서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농민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의 안식처가 되고자 했던 의료원의 직원들은 지난 5년 동안 임금이 동결되고 8개월 동안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김 회장은 “직원들의 희생으로 의료원이 버티고 있는데 몇 십억의 적자를 이유로 폐업을 하겠다는 홍 지사의 발언은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진주시 여성농민회원인 제미애(49)씨도 “밤에도 환하게 불 밝혔던 의료원의 불들이 꺼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진정 돈보다 생명을 우선시해야 하는 게 공공의료기관의 역할 아니냐”고 되물었다.

 

▲ 불 밝힌 창 보다 불 꺼진 창이 더 많다. 17일 현재 의료원에는 26명의 노인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남은 이보다 떠나는 이가 많다. 남은 이도 떠나는 이에게도 의료원을 향한 애달픔의 크기는 깊어져만 간다.
사연 셋. 진주의료원은 1910년 9월 개원했다. 자혜로운 마음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취지에서 진주 자혜의원이란 이름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103년의 세월을 묵묵히 이어왔다. 2013년 4월 ‘돈보다 생명을’ 지켜내 온 공간이 지금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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