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주권이 곧 식량주권이다

  • 입력 2013.04.12 15:46
  • 기자명 이대종 전농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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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우리 민족이 오랜 기간 가장 널리 재배하고 소비하는 기초농산물을 국가가 수매, 비축하고 방출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생산과 유통, 소비에 이르는 전반의 과정을 지휘 통제하게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생산자 농민, 소비자,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가칭)식량보장위원회’를 구성하여 수매대상 품목과 수매량, 수매가격 등을 결정하게 된다. 식량보장위원회는 법적 지위가 보장되며, 이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농업생산과 소비 전반에 걸친 위기상황, 이른바 식량주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농업정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 전국농민회총연맹에서는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의 우선수매 대상으로 제시되어 있는 16개 농산물(쌀, 보리, 밀, 콩, 옥수수, 배추, 무, 마늘, 양파, 고추, 당근, 대파, 사과, 배, 감귤, 한우고기)의 품목별 단체와 농민들을 직접 만나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간담회에서는 각 품목별 생산현황과 유통실태 등을 점검하고 농민들과 함께 생산비를 계산해본다. 생산비 계산은 1년 농사를 복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농사는 종자와 모종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종자는 토지와 더불어 농사에서는 빠질 수 없는 핵심요소이다. 오죽하면 ‘굶어죽을지언정, 씨나락은 까먹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런데 농사의 출발이자 생산비 계산의 첫 단계인 종자 값, 모종 값부터 농민들의 한숨은 시작되고 계산은 엇나가기 시작한다. 초국적 종자기업이 독점하여 장악해버린, 그래서 농민의 품을 떠난 종자는 선택의 여지없이 매년 치솟는 가격으로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올 봄에는 씨나락(정부 보급종 볍씨) 가격이 인상되었다. 씨나락 뿐 만이 아니다. 씨감자, 씨콩 마저 대폭 인상되었다.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다. 정부가 종자보급 사업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는 등 종자보급 사업에 따른 비용을 농민들 부담으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비료값, 농약값, 농기계값 따지기 전에 종자값부터 큰 부담을 안고 한해 농사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국립종자원이 맡고 있는 정부 보급종을 생산, 공급하는 사업을 민영화하려는 계획까지 진행하고 있다. 민영화란 무엇인가? 주권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식량’과 ‘종자’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미 초국적 종자기업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되어버린 채소류 종자에 이어 쌀, 보리, 콩, 옥수수, 감자 등 주요 식량작물의 종자마저 이들의 수중에 떨어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정부는 투자 확대, 인프라 구축, 수출시장 개척 등등 현란한 말잔치를 늘어놓지만 모든 것이 거짓이고 허울에 불과하다.

최근 논란에 휩싸인 동부팜한농 사태롤 보자. 수출기업농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FTA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민의 돈을 빼앗아 가장 큰 수혜자인 재벌 호주머니에 꽂아주며 농업을 재벌의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있다.
국립종자원의 민영화 계획의 본질도 이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종자주권을 지키는 것은 식량주권 실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사안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고유의 식량과 농업생산 체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있어 종자를 지키는 것은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이미 외국의 많은 나라들이 종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가 나서고 있다.

농업의 위기는 농민생존권의 문제를 넘어 식량의 위기이며, 국가주권의 문제이다. 그래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를 비롯하여 종자문제까지 농민들의 요구가 국가가 자기 역할을 높일 것으로 집중 될 수밖에 없다.

봄꽃이 한창이다. 충청도에는 벌써 라일락이 피었다. 원래 우리 나라에서 수수꽃다리였던 그 꽃은 미국인에 의해 바다 건너가 미스킴으로 불리다가 라일락으로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종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그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놓치기 전에, 잃기 전에 지키는 것이 가장 최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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