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이후 쌀개방, 현상유지 전략이 최선

  • 입력 2013.03.22 09:07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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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시장의 관세화 유예 기간이 2014년으로 종료된다. 그래서 2015년 이후에 우리나라의 쌀시장 개방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쌀시장도 관세화로 완전 개방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의무수입 물량만 수입하고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만약 관세화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의무수입 물량은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인가?

2015년 이후 한국이 쌀시장 개방 여부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2015년부터 한국이 스스로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경우 2014년의 의무수입 물량 약 40만 톤은 2015년 이후에도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누구나 관세만 부담하면 마음대로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수입쌀에 대한 관세율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도 있지만 대체로 약 400%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둘째, 지난 2004년과 같이 재협상을 벌여 관세화 유예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대신에 의무수입 물량을 더 늘리는 것이다. 미리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정부 관료들의 과거 발언에 따르면 10년의 유예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소비량 기준으로 최소 4%에서 최대 8%까지 의무수입 물량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의무수입 물량이 지금 보다 약 1.5∼2배 정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셋째, 현행처럼 관세화 유예를 계속 유지하면서, 동시에 의무수입 물량도 더 늘리지 않고 약 40만톤 수준에서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산물협정의 후속 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추가적인 개방조치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즉 DDA 협상 타결 이전까지는 스스로 관세화로 전환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고, 새로운 추가조치를 확대하기 위한 재협상도 벌이지 않고,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국내 쌀농업에 비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에는 한미FTA 및 한중FTA와 맞물려 자칫 미국산 및 중국산 쌀의 관세율을 대폭 감축해야 하는 위험도 안고 있다.

이미 현행 수입쌀의 70% 이상을 미국산 및 중국산 쌀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국내 쌀농업의 붕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의무수입 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도 국내 쌀 소비의 감소를 고려할 때 쌀생산의 급격한 감소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결국 현상유지 전략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울러 현상유지 전략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선택이다. 2015년 이후에 한국이 쌀시장에 대해서 현상유지를 선택하는 것은 WTO 회원국으로서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쌀 관세화 문제는 WTO 농산물협정에 근거하고 있다. UR 농산물협정은 1993년 12월에 타결되어 각 국의 비준을 거쳐 1995년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1995-2000년까지 6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했고, 개발도상국은 1995-2004년까지 10년간 약속한 의무를 이행했다. 한국은 농업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인정받아 10년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런데 WTO 회원국들은 각각 2000년과 2004년 이후에는 추가적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현상유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선진국은 2000년 12월 31일 수준의 개방상태를, 개발도상국은 2004년 12월 31일 수준의 개방상태를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후속 협정문을 만드는 DDA 협상이 아직도 타결되지 않고 장기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2004년 쌀재협상을 통해 2014년까지 추가로 의무를 한 번 더 이행하는 잘못을 범했다. 당시에도 현상 유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부와 통상관료들은 DDA 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는 엉터리 전망을 제시하면서 서둘러 쌀재협상을 마무리하면서 10년간의 추가적인 의무를 덜컥 합의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쌀의 의무수입 물량이 2014년까지 40만 톤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당시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협상은 국제 사회에 한국을 ‘글로벌 호구’로 낙인찍는 계기로 작용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퍼주기 협상’이 국제적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2014년으로 끝나는 쌀관세화 유예 이후에도 여전히 DDA 협상이 타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도 당연히 다른 WTO 회원국과 마찬가지로 현상유지(standing still)를 선택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 쌀의 의무수입 물량은 2014년의 40만 톤에서 고정시키고, 관세화로 전환하지도 않고, DDA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WTO 농산물협정문의 적용과 의무이행은 WTO 회원국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다른 모든 회원국들이 이미 2000년과 2004년 상태에서 현상유지를 해 오고 있는데, 한국만 지난 10년의 추가적인 의무이행에 이어 또 다시 한 번 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2015년 이후 우리가 쌀개방 문제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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