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온실, 역사의 되풀이?

  • 입력 2013.03.08 13:15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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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름농활을 강원도로 갔을 때 일이다. 강원도는 농지가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되니 당연히 농민들의 살림살이 역시 그다지 넉넉지 못한데도 일하러 가는 집집마다 꼭 닭을 삶아 주었다. 왜 이렇게 닭이 흔하냐고 했더니 당시 농민들 말씀이 정부에서 농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 강원도 땅은 닭을 키우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닭이 많았고 그저 형편없는 솜씨나마 돕겠다고 온 대학생들에게 기꺼이 그 닭을 한 마리씩 잡아주었다. 마지막 떠나는 날엔 누군가 산 닭 한 마리를 선물로 주면서 돌아가서 잡아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그랬다. 당시는 우루과이라운드로 인한 농산물수입개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우려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때였다. 정부는 수입개방에 대항할 기발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소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농업구조조정정책이었다. 이 정책의 핵심을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품목에 투자를 늘려 농가수입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는데 대표적인 품목이 닭, 돼지, 꽃 등이었다.

우리가 강원도에서 먹었던 그 닭이다. 당시 닭이나 돼지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꽃이었다. 네덜란드처럼 되겠다고 다짐한 정부가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유리온실을 수백 곳에 짓도록 농민들을 부추겼다. 마치 거기에 심은 꽃들이 농민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엄청난 시설비, 유리 한 장만 깨져도 수입해야 하는 현실은 농민들에게 그런 부를 안겨주지 못했고 결국 부실사업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당시부터 20년 남짓 지난 지금 또다시 유리온실이 화제가 되었다. 벌써 농민들은 대기업이 농업 자체에 뛰어든 것에 대해 확실한 반대의사를 밝혔고 불매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느낀 점 하나.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정확히 20년 전인 1993년 4월 1일에 ‘포철유리온실 토마토 등 수출 어려워 국내시판’란 제목의 기사가 떴다. 그리고 1년 후인 1994년 5월 ‘광양제철 대형 유리온실 전남도에 양도’란 제목의 기사가 떴다. 물론 이 광양제철의 유리온실이 바로 앞의 포철유리온실과 같은 것이다.

당시 포철은 유리온실사업을 시작하면서 국산화를 위한 기술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93년 수익이 나지 않자 국산화사업 자체를 포기했고 뒤이어 이 유리온실을 교육용이라는 명목으로 전남에 떠넘겼다. 시작이 기술개발이었는데 왜 농산물 매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사업을 포기했을까. 국산화사업은 냉정히 따지자면 해당 유리온실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매출과는 별개의 것인데 말이다.

자, 이제 동부한농으로 돌아가 보자. 유리온실사업자로 선정되어 정부 돈을 받았다. 공공연하게 기술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농사 그 자체를 위한 것임을 솔직히 밝힌 것만으로 20년 전 포철과는 다르다고 할 것인가. 100% 수입에 의존하다가 이제 60%는 국산화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20년 전과 너무 똑같은 모습 아닌가?

포철의 유리온실은 겨우 3,500평인데도 제대로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해 국내에서 팔았다. 동부한농의 화옹 유리온실은 그 10배인 3만5,000평이다. 거기다 새만금에 조성할 유리온실까지 합치면 총 100만평이 된다. 포철의 약 300배의 규모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에서 생산된 토마토가 다 수출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토마토 하나만 한다는 말도 신뢰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이 의심 가는 사업에 한미FTA로 인한 피해보전을 위한 예산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 한 사람 딱부러진 해명도 없다. 지금 농민들이 동부한농의 유리온실을 보면서 분노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기본적으로 농업을 살리는 것은 농업이라는 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반복해야 정부의 이 기업화 마인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가.

농업을 살려야 하는 것은 경쟁력을 키워서 돈벌이를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안심하고 안정적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란 사실을 언제쯤 정부는 깨닫게 될 것인지. 오늘 동부한농의 유리온실을 보면서 한숨짓는 이는 농민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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