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교육청, 학교가 살아야 농촌이 산다

농도 중요성 인식 ‘통폐합은 없어’
교육 살리니 자연스레 농촌 찾게 돼

  • 입력 2013.03.04 09:21
  • 기자명 김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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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전국적으로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유도하고 있는 가운데 전라북도는 통폐합 대신 작은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김승환 전라북도교육감은 ‘농산어촌 작은학교 희망찾기’를 임기 후반 역점사업으로 발표하고 TF팀을 본격 가동했다.

지난해 9월 열린 ‘농산어촌 작은학교 희망찾기 정책토론회’에서 김 교육감은 “전라북도에서는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을 하지 않겠다. 기를 쓰고 살리겠다”며 굳건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 교육감은 “농촌의 가치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지만 20~30년 정도가 지나면 농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라북도에서는 농촌에서 자라는 우리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작은학교를 살리겠다”고 밝힌바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농촌에서 학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만큼 통폐합대신 ‘혁신학교’, ‘농산어촌 작은학교 희망찾기’, ‘작고 아름다운학교 육성’ 정책을 통해 떠나는 학교에서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혁신학교는 크게 네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 류미라, 조정인, 이영환 전라북도교육청 장학사(왼쪽부터)가 작고아름다운학교 육성, 농어촌학교 희망찾기, 혁신학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학생 배움 중심의 수업, 다양하고 특성화된 교육과정, 민주적·개방적 학교 운영 문화, 교수-학습 중심의 학교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과서도 가르치지만 실질적으로 미래를 대비한 교육을 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이를 통해 대학에 가더라도 귀농·귀촌을 통해 지역에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로 인해 지역을 살리는 것이 진정한 혁신학교다.

농산어촌 작은학교 희망찾기는 소규모 학교와 과밀지역의 학교를 하나로 엮어 큰학교는 과밀을 해소하고 작은 학교는 규모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과밀학교의 아이들이 작은 학교에 찾아 올수 있도록, 도시와 격차가 느껴지지 않게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통학할 수 있도록 스쿨버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작고 아름다운 학교 육성은 작은 학교들의 특색있는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해서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작은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작지만 강한 경쟁력을 가지는 학교가 아름다운 학교고, 더 핵심적으로 들어간 것이 농산어촌작은학교 희망찾기이며, 이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이 혁신학교인 것이다.

이 세가지 제도의 공통목표인 ‘찾아오는 학교’는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라북도 교육청이 50개 혁신학교의 학생수 증가여부를 분석한 결과 9개 학교에서 2009년 대비 13개 학급, 467명의 학생수가 증가했다. 정읍 백암초등학교 51명, 김제 백석초등학교 39명, 완주 이성초등학교 27명, 진안 장승초등학교 52명, 임실 대리초등학교 52명, 부안 행안초등학교 44명, 군산 회현중학교 118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백암·장승·대리초등학교, 회현중학교가 각각 3개 학급씩, 완주 이성초등학교는 1개 학급이 늘어났다.

전라북도교육청 이영환 장학사는 “전라북도는 농도다. 농도에서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농촌은 급속도로 황폐해진다. 농도에서 농촌이 황폐해 진다는 것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라며 학교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교과부의 정책과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 장학사는 “그런 것들이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더라도 극복할 노력을 하지 않으면 농촌은 매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통폐합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상황, 문화, 조건에 맞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새정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농어촌지역의 소규모학교들이 통폐합 위기를 극복하고 돌아오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위해 새정부에서 농어촌학교 살리기정책을 추진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국회 계류중인 농어촌교육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농어촌 교육 지원과 교육력을 제고할 수 있고, 전라북도의 교육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측면에서다.

또한 전라북도교육청은 혁신학교 이후에는 어떤 방향으로 이어갈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일반학교에 성과들을 나눠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폐합 숙려제를 통해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교과부의 예산지원 등도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 장학사는 “언젠가는 아이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곳에서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고향을 잊지 않고 이곳으로 돌아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은학교와 농촌에도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 학부모 귀촌도
▲ 대리초등학교 농촌유학센터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농촌유학센터의 주말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에 위치한 대리초등학교는 ‘찾아오는 학교’의 대표적인 곳이다. 도시에서 교육에 대한 갈증을 느낀 양성호 선생님은 같은 뜻을 가진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들이 떠나가는 학교, 아이들과 함께 마을이 사라지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다 대리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2009년 당시 재학생 16명으로 폐교위기에 처한 대리초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서울, 제주, 전주에서 학생들을 끌어 모았고 학부모들은 학교의 취지를 공감해 아이들을 보냈다. 결국 지금은 학생 수가 52명까지 늘어났다. 선생님들은 마을 속으로 들어오면서 농촌유학센터를 짓기로 결심했다.

마을 어른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기까지 세달, 자치단체와 협의를 하는데 여덟달이었다. 결국 마을에선 땅, 지자체에서는 군비 2억원을 지원받아 농촌유학센터를 세웠다. 학생 수가 늘어난 것도 농촌유학센터가 한몫 한 것이다.

대리초등학교 황장원 선생님은 “학교가 없어질 위기에서 아이들이 찾아오고 채워짐으로써 학교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임실군은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인데 학생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농촌유학센터 임성훈 사무장은 “학교가 변해야 농촌이 변하는 것처럼 귀촌을 결심한 이들에게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해결된다면 가장 큰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다. 또 지역에 아이들이 많아짐과 동시에 가구수가 많아지고, 인구수가 많아지면 지역이 발전된다”고 덧붙였다.

양성호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의 가장 큰 목표는 ‘교육’이었다. 농촌에서 스러져가는 교육을 살리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늘어났고, 농촌에 부모들이 찾아들었다. 학교가 서있으니 농촌의 활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었다.

아이를 먼저 대리초등학교에 보내고 4년전 귀촌을 결심한 학부모는 “전주에서 살다가 귀촌을 하게 됐다. 도시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자꾸 찾아들다 보면 농촌이 유지가 되고, 우리가 사는 농촌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리마을에서 아이를 낳고 대리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유인환 씨는 “학교가 폐교됐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과 기존 마을사람들이 잘 융화되는 것은 과제로 남아있는 상태”라며 농촌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인구가 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라는 의미의 ‘공동체’도 중요함을 지적했다.

전라북도 진안군 신정리에 위치한 장승초등학교 역시 2010년 13명의 학생이 재학중이었고, 입학생이 없어 2011년이 되면 학생 수 9명으로 폐교위기의 학교였다.

장승초등학교 한상윤 교감은 “2010년부터 선생님들이 작은학교를 살려보자고해서 학생들을 모집했지만, 폐교위기의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없었다. 김승환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혁신학교라는 타이틀을 내걸었고, 우리 초등학교도 공모해 혁신학교 지정을 받았다. 전주 시내의 학부모들에게 홍보를 해서 45명 정도의 학생이 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입학식날 56명의 학생이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장승초등학교는 작은학교를 살리겠다고 마음먹으면서부터 모든 일에 학생이 주가 되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늘면서 부족한 교실을 새로 지을 때도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교실을 지었고, 기말 시험만 담임선생님 자율적으로 보게 했다. 장승초등학교 역시 교육이 살자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학부모들이 마을로 모여든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학부모 천춘진 씨는 “진안군이 귀농 1번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귀농정책을 폈지만 그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학교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들이 귀농·귀촌을 한 확률이 더 높았다”며 “그래도 귀농인들이 지역주민들과 잘 섞이는 게 어려운 과제”라는 입장은 대리마을과 다르지 않았다.

이어 천 씨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다. 오히려 구심점 없이 귀농한 사람보다 훨씬 수월하게 농촌에 적응할 수 있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라북도의 농촌에는 학교가 버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도 조금씩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먼저 농촌이 잘살고, 농촌이 행복하지 않으면 농촌의 먼 미래도 기대하기 힘들다는게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글: 김희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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