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이 살아가기

  • 입력 2007.12.23 09:31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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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탁 충북 충주시 산천면
또 한 해가 갔다. 몇년전만 해도 12월이 저물어 가면 이런저런 감회로 마음이 어지럽더니, 이제는 그런 것도 없어졌다. 세월이 흘러 매사에 무덤덤해 졌다고 할 만한 나이도 아니다.

팔팔한 갓 서른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지 13년, 그 사이에 아픈 데가 생기고 귀밑머리가 쇠기 시작한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지쳤다.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아득함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처음 3천여평의 과수원을 일구어 농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소박한 꿈을 꾸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해 감행한 귀농은 아니었다. 자급자족과 자연친화적인 삶이 목적이었다. 무한경쟁과 아귀다툼의 도시에서 영원히 은퇴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길이었다.

처음에는 만족스러웠다. 배나무와 포도나무의 묘목은 잘 자라 주었고 콩이며 참깨 들깨, 철마다 자라나는 온갖 푸성귀는 농촌 생활의 기쁨을 한껏 맛보게 했다. 게다가 겨울철의 그 여유로움이라니. 아궁이에 불을 넉넉히 넣고 구들장에 등을 지지며 책을 벗삼아 밤을 새워도 겨울은 정겨웠다. 곧이어 닥친 IMF 때, 힘들어하는 주위 사람 몇몇에게 진정으로 귀농을 권유했던 적도 있을 만큼 그 때는 꿈을 이룬 것 같은 착각 속에 있었다.

과수들이 자라 수확이 시작되기까지 3년 동안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은 생활비로 모두 들어갔다. 아이도 셋이 되었고 아무리 시골이라고 하더라도 생활비는 도시의 반 정도는 들어갔다. 각종 농기계의 구입과 저장창고 신축 등 예상치 못한 지출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본격적으로 과일을 수확하기 시작하면 별 문제는 아닐 거라 싶었다.

귀농 4년째부터, 그동안 즐긴 농촌생활을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온갖 어려움이 총공세를 시작하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중국 농산물의 무차별적 수입이었다. 그로 인해 고추, 마늘, 감자 등의 밭농사가 붕괴되었고 그 대체작물로 과수면적이 대대적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특히 내가 심은 배와 포도의 면적이 엄청나게 늘어나 가격이 폭락하였다. 농사를 잘 지었다 해도 생산비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나는 자연친화적인 농사를 하겠다고 화학비료나 성장호르몬제 등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맛은 어떻든 간에 도시의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과일을 도저히 생산할 수 없었다. 포도나무는 토질에 맞지 않아 근두암이라는 뿌리병이 번졌고 배나무도 농약을 한번만 거르면 온갖 병이 창궐하였다.

빚이 생기기 시작했다. 원했던 자연친화적인 삶은 봄부터 가을까지 농약을 뒤집어쓰고 살다시피 하며 희미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자연은 그만두고 자급자족이라도 해야 했다. 남의 밭을 빌려 복숭아나무를 심고 포도나무를 캐낸 자리에는 다시 사과나무를 심었다. 2년이 지나자 사과나무는 원래 내가 심고자 했던 품종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묘목상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난 후였다. 이 정체 모를 사과나무를 뽑아내고 다시 묘목을 사다 심었다. 배는 끝 모를 가격 추락을 계속하고 복숭아는 무슨 조화속인 지 익기도 전에 꼭지가 빠져 땅바닥이 하얗게 떨어졌다.

겨울날의 여유로움도 사라졌다. 애물덩어리가 된 배의 처리를 고심하다 배즙을 내리기로 하고 기계를 들여놓았다. 농사를 끝내고 두어 달은 꼬박 배즙을 내린다. 그러다보면 곧바로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배즙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약간 형편이 나아졌다. 역시 가공을 하면 부가가치가 붙기는 한다. 그래서 정부나 농촌기관에서는 늘상 농민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 농사를 하라거나 가공을 하라고 닦달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처럼 웃기는 소리도 없다. 그것은 마치 힘들어하는 중소기업에게 삼성전자처럼 잘 팔리는 반도체를 만들지 왜 양말짝을 만드느냐는 말과 같다.

어쨌든 13년이 흘렀다. 그동안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농업에 별다른 희망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경험으로 짐작하건대 우리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살농(殺農)을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한 누군가 희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냉혹한 사실이다.

한 해를 보내면서 더욱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5년 만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도 있다. 무슨 입에 발린 소리를 하든 새로운 정권 하에서 농촌은, 아무래도 대한민국 안의 외딴섬이 될 것 같다. 물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지치고 희망이 없는 대로. 왜냐하면 아무리 인간이 멀리 가든, 설사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대도 결국 다시 두 발이 내릴 곳은 이 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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