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지키고 떠나라

  • 입력 2013.02.01 09:09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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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말인 요즘, 역대 최고의 도덕성을 지닌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하던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이라는 것 하나로 여론을 무시한 채 특별사면을 강행했다. 심지어 자신에게 충성을 받친 추한 권력형 범죄자들을 위해 용산참사 수감자들을 들러리로 세우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행태는 집권초기인 2008년도 미국쇠고기 졸속 수입타결 때 이미 예견되었다.

정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전문가 회의도 생략한 채 앞 정권 때의 30개월 미만 미국쇠고기 수입조건을 갑자기 30개월 이상으로 개방하고 더욱이 국제적으로 광우병 위험성 때문에 제한되고 있는 특정위험물질(SRM)까지 수입하는 것으로 미국과 협상을 마무리했던 것이다.

특히 후자는 소 내장도 즐겨먹는 우리 국민의 식습관 상 더욱 조심해야 할 사안이었다. 결국 촛불시민들의 요구로 인해 정부가 졸속으로 미국과 맺은 30개월 이상의 협상조건은 공식적으로 유지하되 한시적으로 30개월 미만의 쇠고기 수입이라는 애매모호한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오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봐도 당시 정부 주장을 합리화하고 정당성 부여를 위해 근거 없는 대국민 약속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향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지를 할 것이며, 한국이 미국과 맺은 협상조건은 과학과 국제기준에 의거한 것이기에 주변국은 곧 한국정부와 미국이 맺은 협상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는 모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과 대만 등 우리나라 주변국이 미국과 협상하여 한미 쇠고기 수입 조건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수입할 경우에는 정부도 미국에 대하여 주변국과 동일한 조건으로 쇠고기 재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윽고 정부가 국민에게 강조한 내용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어긋났다. 주변의 어느 나라도 WTO에 제소당하지 않았고, 더욱이 그 후 대만은 30개월 미만 수입 조건으로 그 개방 폭을 줄였다. 이에 미국과 재협상을 진행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국민의 재협상 약속이행 요구에 대비하여 외교통상부 간부를 미국대사관으로 보내어 대만에 압력을 넣어 달라고 초라한 사정까지 했다.

한편, 일본은 최근 미국과의 협상에서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조건으로 타결했다. 이 내용을 전하는 뉴스에서 "미국 정부가 ‘국제 기준을 들어’ 수입 조건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에 맞추어 일본이 미국쇠고기 수입조건을 20개월에서 30개월 미만으로 완화헀다“라는 표현이다. 미국의 국제기준도 촛불시민이 주장한 것과 같이 30개월 미만 수입이라는 것을 미국 스스로 말해준 셈이다.

물론 정부가 그토록 안전하다고 한 미국에서 지난 해 광우병이 발생하자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스스로 30개월 미만 수입이라는 촛불시민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안전성을 강조한 것을 상기해 볼 때 당연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공식적으로 맺고 있는 수입조건은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SRM마저 수입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촛불시민들 덕분으로 지금도 한시적으로나마 30개월 미만 미국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이번 일본 발표를 접한 한국정부가 대국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과의 재협상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도 미국 대사관 찾아가 사정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강조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국민과의 약속 이행은 앞으로 들어설 새 정권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2008년도 국회 청문회 당시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정권의 근거 없는 주장을 과학적이라면서 우겨댄 이들이 여전히 이름만 바꾼 새누리당에 속해 있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후 외유성 해외출장으로 물의를 일으킨 장윤석도 있고, 국회를 떠났지만 황당한 발언으로 잘 알려진 강용석, 나경원, 홍정욱 등도 당시 정부주장이 국제기준이라면서 국민을 호도한 이들이다.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죽지만, 과거를 잊으면 미래가 죽는다. 이들이야말로 당시 등장한 엉터리 정부전문가들과 함께 미국과의 재협상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면, 이명박 씨도 심복 감싸는 특별사면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대국민 약속은 지키고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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