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농지수탈의 대표국가, 한국

  • 입력 2013.01.18 14:21
  • 기자명 허남혁 충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0년 이래로 전세계 시민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핫이슈 중 하나가 바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지수탈(land grab) 문제다. 국제기구와 국제적 시민단체들의 보고서, 연구자들의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큰 규모의 국제학술대회가 두차례나 열렸다.

‘농지수탈’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이는 선진국 자본들이 대농장 경영을 통한 식량확보(또는 바이오연료)를 목적으로 제3세계 농지를 헐값에 매입, 임차하는 행위를 뜻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세계 소농들의 상당수가 법적 토지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농경행위를 영위하고 있고, 그렇다 보니 해외 자본의 법적 권리행사에 속수무책으로 그간 살던 땅에서 떠나서 농장노동자나 도시빈민으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농장은 GMO종자를 사용하는 등 엄청난 규모로 산업화된 농업을 영위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제3세계 농지수탈의 대표국가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제3세계 수탈이 서구 선진국가들의 주도였다면, 2007년 글로벌 식량위기 이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제3세계 농지수탈’은 미국과 유럽 뿐만 아니라 식량자급률이 낮은 중동 산유국과 한․중․일 동아시아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런데 2008년 대우 로지스틱스(과거 (주)대우의 계열사)가 마다가스카르에서 130만 헥타에 달하는 농지를 99년간 헐값에 임차하는 계약을 맺었다가 이나라 국민들의 분노로 인해 폭동이 발생, 대통령이 하야했던 사태가 국제사회에 너무도 큰 충격을 주면서 한국을 각인시켰다(규모 면에서 다른 나라들의 투자건들을 압도했기 때문).

이 때문에 보고서든 논문이든 신문르포나 다큐건 간에 제3세계 농지수탈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한국은 이 사건과 함께 연상되면서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민간자본 차원에서 진행되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과는 달리, 정부 차원에서 온 나라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MB정부 들어 해외농업개발협력법을 제정(2011)하고 농어촌공사와 농수산물유통공사에게 지원의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제3세계 농지수탈’ 논의는 투자국으로서 어떻게 하면 해외농업투자를 활성화하여 해외식량조달 비중(식량자주율)을 높일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포장하기 위한 수사가, 국제협력 차원에서 농업기술력이 낮고 인프라가 미비한 제3세계 국가의 농민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새마을운동의 수출)하여 이들을 돕는다는 것이다.

정부나 국책연구기관 뿐만 아니라 농업계의 대부분도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에 소속되어 있는 전농과 전여농이 농지수탈 관점과 국내 농업투자 우선론적 관점에서 이러한 해외농업투자에 반대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너무 먼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사실 농지수탈 개념은 국가간에만, 농업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광의의) 농지수탈 개념을, 농업용도의 해외 대농장 건설 뿐 아니라 대규모 리조트 건설이나 국책사업 추진과정에서 (원치않는) 농민들의 농지를 수용하는 행위까지 포함시킨다. 그렇게 보면 사실 국내에서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농지수탈이 일어났고, 지금도 골프장이나 댐건설 등으로 계속해서 농지수탈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국내의 농지수탈과 해외 제3세계의 농지수탈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자국내 농지가 줄어들면서 식량자급률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내부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밖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땅을 빼앗긴 우리나라 농민들의 고통은 제3세계의 가난한 소농들이 그간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는 고통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농지수탈이라는 이슈가 소비자에게 주는 의미도 좀 더 분명해진다. 내가 농산물을 고르는 행위 하나하나가 땅을 빼앗기는 농민의 고통을 배가시키느냐 덜어주느냐와 직결되는 것이다. 로컬푸드를 활성화하여 도시화로 잠식되는 도시근교농지를 살리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지수탈 문제를 우리 사회가 농업문제와 먹거리문제 전체의 관점에서지금부터라도 정말 치열하고 깊이있게 성찰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