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한 살. 이금자 할머니가 두툼한 옷깃을 여몄다. 150cm도 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가 더 움츠러들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서울 도심 한구석. 덕수궁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에서 14일 열린 용산참사 4주기 추모미사와 밀양 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촛불문화제에 연이어 참석한 이 할머니는 이날 아침 버스를 타고 밀양서 서울로 먼 길을 나섰다.
쌍용차, 현대차 비정규직, 제주 강정 해군기지, 유성기업 등 기업의 횡포에, 자본의 논리에, 그리고 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서 핍박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서로 연대하고 격려하기 위해 '희망순례'를 나선 길이었다.
거대 공기업 한국전력의 송전탑 건설에 맞서 8년간을 싸워 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의 노인들이 혹한의 겨울, 살기 위해 송전탑에 오른 노동자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떠나온 길이다.
용산참사 4주기 추모미사에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 들고 묵묵히 기도 올리던 이 할머니는 "감사해서 눈시울이 뜨겁다"고 말했다. "여러분과 함께 하니 몸에서 열이 나 하나도 춥지 않다"고도 했다. 그리고 "꼭 승리할 것"이라 했다. "사람을 짓밟고 서민을 죽이는 저들은, 순리를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에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노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침묵보다 싸움을 택한 이 할머니는 미사를 마치며 농성촌에 모인 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꼭 이루어질 것을 염원하며.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