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단순생산’에 대한 유감

  • 입력 2013.01.11 13:30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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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값이 8% 이상 인상됐다. 단순히 밀가루 값의 인상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는 모든 식품의 값이 덩달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우리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면 국제 곡물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생존을 점점 벼랑으로 내몰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운동 당시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친필서명을 남겼다. 박 당선자가 내세운 농어촌 공약을 가만히 읽고 있자면 이 모든 것을 ‘직접’ 어떻게 챙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하는 농업이 우리가 꿈꾸는 농업과 상당히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후배는 ‘좋은 말은 다 모아다 공약을 만들었으니 제대로 하는지 잘 지켜보자’고 했다. 한 젊은 영화배우는 “끝까지 감시하고 지켜보자”면서 “그 약속의 책임을 믿음이란 무기로 그녀에게 강요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내게는 도저히 그냥 감시하고 지켜볼 수 없는 공약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업의 ‘신성장 동력화’란 공약이다.

박 당선자는 우리 농업을 ‘농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단순생산에서 성장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신성장 동력화 필요’하고 ‘이를 위한 IT·BT 연계 활용, 농어업 관련 R&D 투자 확대, 종자·생명산업 육성, 농어업과 고부가가치 식품산업 연계 노력이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공약에서 ‘첨단과학기술을 접목하여 농업경쟁력을 높이겠’으며 ‘농업분야에 대한 R&D 투자를 더욱 강화해서 가축이용 신약개발이나 특용작물 연구 등 농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이런 공약이 나온 데는 2011년 4월 방문한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농업은 95%가 과학기술이고, 5%가 노동’이라고 말한 것에 느낀 바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 당선자의 공약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우리의 농업을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단순생산’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벌써 농업을 바라보는 첫 출발점부터가 삐걱거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욱이 2009년 뉴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농업보조를 철폐하고 농업개혁에 성공한 뉴질랜드를 본받아 내놓은 농업정책과 오버랩 된다.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로 개편하면서 내놓았던 농업정책인 ‘일류 농림수산식품 :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이라는 슬로건과도 특별히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당시 농업정책은 ‘규모화’, ‘기업가 정신’, ‘일류 먹을거리’, ‘고부가가치 식품산업’라는 네 개의 핵심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박 당선자의 ‘신성장 동력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단작을 부추기는 규모화, 먹을거리 생산이 아니라 식량이라는 상품생산을 통해 돈을 벌지 못하면 퇴출당해야 하는 기업가 정신, 값싼 원료를 가공하여 비싸게 팔는 고부가가치 식품산업, 이것만으로도 이미 먹을거리에 관한 본질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농업을 돈벌이 산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먹을거리 기본권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거리가 질이나 양이나 값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안정적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니 농업에 대한 지원은 기본적으로 먹을거리 생산의 보장이 목적이어야 하며 성장산업으로의 발돋움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농업예산은 직접적으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하는 데 쓰여야지 농업을 돈벌이 대상으로 삼는 주변 산업에 쓰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먹을거리 기본권의 보장을 위해 농민단체에서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요원해 보인다. 이미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밭농사직불제의 예산확보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예산의 많은 부분을 신약, 특용작물, 종자 등 이미 산업화하여 돈벌이의 목적이 된 분야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첨단과학기술의 지원에 쓸 모양이다.

당장 밥상에 올릴 먹을거리가 위기인데 어떻게 이를 지켜보고 감시하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 공약 자체가 정책화 하는 것을 막아내고 바로잡아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많은 농민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요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는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가며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새해부터 그저 막막하다.

여전히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의 상당수도 농민들의 이런 주장을 자신들의 소득을 보장받기 위한 것으로 폄하하기 일쑤이다. 새 정부가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그 먹을거리 생산이 국민의 기본권이며 인간의 생존권이라는 사실을 새 정부에게, 그리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알리고 설득할 것인가? 이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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