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꼭 생강을 심어야겠어!

  • 입력 2012.12.10 09:25
  • 기자명 육은숙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 도시소비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같이 일하는 언니가 밭에서 캔 생강을 들고 들어왔다. 봄에 사무실 옥상텃밭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 들어가는 것 말고 완전한 형태의 생강을 처음 본 것 같아서 신기하게 쳐다봤다. 덩어리가 울퉁불퉁하고 큼직한, 잎사귀가 달려있고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생강.

그런 생강을 뭐에 쓰려나 하고 봤더니 껍질을 까고 저민 뒤 말려서 차를 끓여 먹을 거라고 했다. 그 날 오후 저민 생강을 바로 냄비에 끓여서 봄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아카시아효소를 타서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이란! 그 못생기고 매캐한 놈이 전통찻집에서 몇 천 원이나 주고 사먹어야 하는 고급 생강차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슈퍼로 달려가서 생강 한 팩을 사들고 들어가 차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도 내년 봄 되면 옥상에다가 생강을 심어야겠어!’ 그렇다. 나는 올 해 처음으로 옥상농사를 지어봤다. 도시에서 자란 나. 도대체 부추와 쪽파를 구분 못하고, 씨앗이나 모종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고, (실과시간에 뭘 배웠는지)솎아주기나 순치기 같은 농사 기초지식도 모르는 내가 농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주변의 언니들 덕분이다.

시골에서 자라서 식물의 생애주기(?)에 익숙한 언니들이 사무실 옆 손바닥만한 옥상텃밭에다가 상추며 쑥갓이며 고추를 심어, 맛있는 샐러드나 된장국을 해주면 그것이 어찌나 신기한지.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땅의 기운과 햇빛의 기운, 자연의 모든 기운을 함께 받아들이는 거라면 너무 호들갑일까? 그러나 너무 당연한 그 이치가 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스티로폼 박스와 흙을 구하고, 씨와 모종을 여기저기서 사고 얻고 해서 방울토마토, 상추, 청경채, 쑥갓, 콩, 시금치 등 다채롭게 농사를 지었다. 고추는 진딧물이 와서 일찍 죽었지만 청경채와 방울토마토는 나를 정말 오랫동안 즐겁게 했다. 쑥갓은 너무 많이 나오는데 잘 먹게 되질 않아서 결국 노오란 꽃들이 피어난 예쁜 꽃밭이 되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지금은 겨울. 한두 달 전쯤 옥상의 모든 식물들을 철거한 뒤로 올라가보지 않은지 한참 됐다. 겨울이 되면 농사를 짓지 못하니 심심해서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는 그냥 잘(?) 지내고 있다. 그렇지만 농사를 경험하고 난 지금의 나는 농사를 해보기 이전의 나와 조금 달라져 있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슈퍼에 가서 못 보던 채소가 보이면, ‘아, 요것은 이맘 때 나오는 채소로구나’ 하고 생각한다던지, 새로운 채소 요리를 보면 ‘아, 내년에는 조것을 심어다가 요리해봐야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음식과도 한결 친해졌고 채소를 대하는 태도(?)도 한결 편해졌다. 무엇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보이는 한강 중간의 노들섬 텃밭을 보게 되면 마치 내 일처럼 뿌듯해져 아빠미소를 짓게 되었고, 시골에 가면 예전에는 그냥 그림같은 풍경이던 논과 밭이 이제는 그 밭을 일구는 농사꾼의 얼굴, 그 음식을 식탁에 올려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얼굴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나는 내년에도 옥상텃밭을 지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것저것 심어볼 것들을 손가락에 꼽으면 즐거운 마음이 든다. 수확량이 좋고 먹기도 좋은 방울토마토와 상추, 청경채는 한 번 더 도전하고, 먹기 어려운 쑥갓 대신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쪽파를 심어봐야지. 어린 잎들을 솎아주어 새싹비빔밥을 해먹고, 강낭콩은 키워서 밥에 넣어먹고, 피망이나 양상추로는 샐러드를…. 아, 군침 돈다! 그리고 생강도 꼭 심어야겠다. 생강이 많이 자라면 잔뜩 저며서 감기에 잘 걸리는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지. 텃밭은 작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서울농부니까! 육은숙 서울시 구로구 천왕동 도시소비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