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뜨거운 감자 ‘시장도매인제’ 도입, 계속되는 논란

기준가격 정하는 중앙도매시장 역할 어려워져
중도매인 사이에서도 의견 분분

  • 입력 2012.12.10 09:02
  • 기자명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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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이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의해 의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에 대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이루어진 이번 개정조례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가락시장이 중앙도매시장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서울시 농수산물도매시장 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이 지난달 22일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의해 의결됐다.

그러나 서울시의회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도매시장법인 및 산지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관련 조례를 일방적인 방법으로 의결해 이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도매시장의 뜨거운 감자 ‘시장도매인제’ 도입 논란, 득과 실은 무엇일까.

기준가격 정해지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 “안돼”

시장도매인제는 생산자와 도매인이 직접 거래하는 방법으로 물류비를 낮추고, 경매제도의 단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농산물 가격등락폭을 줄임으로써 출하자의 안정적 수취가격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제도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통인들이 이를 도입하는 데 있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국내 농산물의 기준가격을 결정하는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가 적합한 제도냐는 의문에서다.

중앙도매시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기준가격 형성이다. 당일 가락시장에서 공시된 가격이 대형유통업체의 거래 가격에 영향을 주고, 시장도매인 역시 경매가격을 기준으로 수탁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시장도매제로 인해 경매제가 흔들릴 경우의 위험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

실제 2004년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한 강서시장의 경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시장도매인제 운영 성과를 진단하기 위해 실시한 연구용역 결과 도매시장의 핵심 기능인 거래기준가격 형성이 미흡하고, 가격 결정을 출하자가 아닌 시장도매인이 주도해 전반적인 농가 수취가격을 높이는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시장도매인제의 경우 경매결과를 보고 가격을 더 쳐준다고 하는데, 실제 500원 정도만 더 얹어주는 격이다. 오히려 시장가격을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거래 투명성 확보는 물론이고 국내 농산물 보호조차 어려워

 가락시장의 경매제도는 과거 위탁상의 불투명·불공정 거래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그런데 수집과 분산기능을 동시에 하는 위탁상과 시장도매인의 비슷한 모습에 출하자들은 과거의 폐단이 반복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경매제도에 따라 출하자가 도매시장법인에 물건을 수탁하면 경매사와 중도매인에 의해 낙찰가가 공개되고, 이에 따른 대금 지급은 즉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제의 경우 출하자가 직접 시장도매인에 물건을 넘기기 때문에 실제 판매가격이 조작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대금지급을 지연시키기 위해 수탁물건을 매수물건으로 조작하는 경우도 있어 상당수의 출하자들이 시장도매인제를 꺼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광형 (사)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시장도매인제와 경매제를 병행하게 될 경우 많은 출하자들이 경매제를 선택할 것”이라며 “직접 수탁하는 출하자들이 어떤 제도가 가장 좋은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산지 규모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가격교섭력이 떨어지는 출하자들은 자본력을 무기로 밀고 들어오는 시장도매인의 가격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사무총장은 “시장도매인제도 자체는 좋다. 그런데 산지 조직화가 과일류를 제외하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시장도매인제를 가락시장에 도입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시장도매인이 특정품목을 독점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취급 품목 제한이 없는 시장도매인들이 ‘돈 되는’ 품목만 선호하다 보니 국내농산물보다 수입농산물 취급에 열을 올린다는 것.

무엇보다 계절에 따라 수익률이 높은 농산물만 취급하게 되면 판로가 불안정한 농가는 안정적으로 한 가지 품목을 생산할 수 없어 국내 농산물의 수급조절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도매시장법인들은 법적으로 수탁거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전국의 모든 출하주들의 판로처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시장도매인들은 몇몇 출하주들과만 관계를 형성해 거래하기 때문에 수탁 거부로 인한 농가 피해도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도매인, “경매제와 병행하기 때문에 문제없다”

영세 중도매인, “시장도매인제 반갑지 않다”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중도매인들 입장은 다르다. 시장도매인제만 운영하는 것이 아닌, 경매제와 병행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고 이번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계기로 향후 자유거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시각이다.

가락시장의 한 중도매업 관계자는 “나중에는 도매법인들에게도 판매권을 줘야 한다. 사실상 지금 독점화 돼 있는 것”이라며 “경매비리도 상당한데 시장도매인제를 비판할 때 공정성과 투명성을 가지고 비판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투명성이 담보 되지 않았다면 강서의 시장도매인제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겠느냐”며 “그렇게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면 왜 경매제는 민간법인에 맡기나. 농협이나 관리공사가 경매제를 운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거래규모 10억원 미만의 영세 중도매인들은 시장도매인제가 반갑지 않은 눈치다.

자본금과 경쟁력이 있는 중도매인들은 시장도매인제를 환영하지만, 영세 중도매인들은 가격 교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매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상황.

때문에 10~20억원의 거래규모를 유지하는 중도매인들이 모여 하나의 시장도매인을 형성, 운영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으나, 점포 배정 등의 문제로 실현 가능성은 없을 전망이다.

이해 관계자 충분한 협의 통해 개정 조례안 승인 돼야

이번 개정 조례안을 두고 시장 내 반발이 거셌던 가장 큰 이유는 이해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방법으로 의결됐기 때문이다.

개정 조례안이 통과된 22일 서울시의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측은 “이해 관계자들과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말했지만 당시까지도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반대하는 도매시장법인의 반발과,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중도매인간의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출하자와의 협의 역시 없었다.

이를 두고 한 시장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쇼 아니겠는가. 중도매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개정 조례안에 언급된다는 것 자체가 시행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전빛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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