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시절에 기억해야 하는 것들

  • 입력 2012.12.02 21:38
  • 기자명 우희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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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지고 있다. 초겨울의 입구가 되었다. 우리사회는 대선을 앞두고 말 많던 야권 단일화도 마무리되고 이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선거의 주역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했던 문재인과 현 정권의 이명박 대통령을 잇는 박근혜다. 각자의 관점은 달라도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으며, 또한 두 사람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이 있기에 힘든 선거전을 치르는 것으로 믿는다.

양측 모두 국민을 위하고, 근로자와 함께 하고 농촌을 사랑한다고 힘주어 외친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얻어야 자신의 표로 이어지기 때문이겠지만, 이들의 감언이설을 듣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동안 우리 기억 속에 잊혀진 것이 새삼 고개를 든다.

선거철이 될 때마다 언제나 찾아오는 이 망할 망각의 시대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낼 것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수백만 마리의 동물이 고통 속에 생매장 당한 구제역 사태가 있은 지 겨우 2년 지났을 뿐이다. 농축산인만이 아니라 관련된 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힘들었던 사회재난이었다.

그런데 어느 정치인도 그 상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뿐일까. 나이 많은 부모를 두고 도시로 길을 떠난 농촌의 젊은이들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던 쌍용차 사태, 용산 사태를 비롯해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는가. 이런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도록 진행되었던 현 정권의 언론 탄압 등, 현재 진행형인 사태도 전혀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죽어 가고, 돈이 없어 촛불로 지내던 가난한 노부부는 손자와 함께 불길에 목숨을 잃고 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정치 구호는 많아도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

어찌 그뿐인가. 올해 초 현 정권이 그토록 안전하다고 선전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 한국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즉시 TV에 등장해 한국은 30개월 미만 쇠고기를 수입하기에 안전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이렇듯 수입쇠고기의 안전 근거로 든 30개월 미만 쇠고기 수입 조건은 촛불시위로 한참 뜨거웠던 2008년도 당시 정부가 비과학적이자 정치세력에 선동된 종북 좌빨들의 억지 주장이라고 몰아붙이던 촛불시민들의 요구 내용이었다. 당시 먹거리 안전성 때문에 30개월 미만의 미국쇠고기 수입을 요구하던 무고한 시민들이 벌금형을 받고 범죄자가 된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장관의 그런 발언은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움이었다. 2008년도 당시의 정부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이었는가를 정부 스스로가 인정하던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았다. 이렇게 대선 정치구호 속에 현 정권의 실정은 잊혀지고, 이미 정리돼야 할 과거의 박정희나 노무현을 들이대며 싸우고 있을 뿐이다.

결국 정치논리, 정치공학 속에 망가져 가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자 농촌이다. 그렇기에 누가 말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현 정권 들어서서 우리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분노를.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가 죽겠지만, 과거를 잊으면 미래가 죽는다.

그렇다면 이 망각의 시절에 우리에게 미래는 있을까? 그 답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현 정권 들어서 파괴되어 가는 농촌과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미래를 약속하려면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달콤한 구호는 잠시 멀리하고 조용히 생각해 보자. 그동안 파괴되어 간 너와 나의 삶의 터전을. 그것을 되찾기 위한 나의 한 표를 누구에게 던질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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