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학교를 갔다와선 폭탄선언을 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께 내일부터 급식 안하겠다고 말씀드렸어. 그러니 내일부터 도시락 싸줘.” 그 때 들었던 첫 생각은 “이런, 집에 햄이고 소시지고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지?”였다. 아마도 70년대 학교를 다녔을 사람들이 항상 느꼈던 ‘나도 햄, 소시지 반찬 먹고 싶다’는 소망 아닌 소망이 내 뇌리 속 어딘가 깊은 곳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 순간 문득 떠올랐던 탓이리라. 그러나 이미 되도록 가공식품 대신 원료농산물 위주의 밥상을 차리기로 결심한 지 5년째, 그 결심을 딸의 도시락 때문에 포기할 순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반찬으로 싼 가공식품은 두부가 유일할 정도로 난 완강히 나의 원칙을 지키려 애를 썼다. 그 후 학년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다시 급식을 하게 되기까지 약 4개월, 새벽마다 반찬을 걱정하면서 고행과도 같은 도시락 싸기는 계속 됐다. 그러나 그 4개월 동안 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교급식의 원료가 친환경이냐, 돈을 내느냐 와는 전혀 다른 문제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의 깨달음은 바로 아이들 입맛의 정직함에 기인한다. 그 정직함이란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딸아이가 한 이야기에 드러난다. “우리반 애들이 다 날 부러워 해. 엄마가 도시락 싸준다고. 그리고 우리집 반찬은 김치도 맛있다고 서로 먹으려고 해.” 아이들 1학년 시절 급식당번 때 먹어본 학교급식에 대해 ‘맛만 좋구만, 애들이 뭐가 맛없다고 난리야’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아이들의 말은 의외였다. 그리고 난 그동안 나의 편리함에 가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줄 수 있고, 우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반찬으로 인한 아이들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몇 가지 사실만으로 간과했던 문제가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그건 바로 표준화, 규격화해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의 목록 안에 우리 밥상에서 뗄려야 뗄 수 없는 각종 장류와 김치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일년 365일 항상 같은 맛인 된장과 고추장, 김치를 먹어야 한다. 사실 어른들, 특히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은 항상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그러면서 주는대로 먹을 수 있는 단체급식을 부러워한다. 어쩌다 괜찮은 식당을 발견해도 1, 2주 먹다보면 질리게 되고 또다른 식당을 찾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항상 학교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같은 맛의 된장국을 먹어야 하고 항상 같은 맛의 김치를 먹어야 한다. 집에서 담근 김치는 담는 그날부터 날김치에서 익은 김치, 신김치까지 매일매일 조금씩 맛이 바뀐다. 집에서 담는 장류도 담을 때마다 짜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매번 맛이 바뀐다. 그렇게 혀가 질리지 않도록 바뀌는 덕분에 그 오랜 세월 우리는 우리 전통식품을 지켜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장가공식품이란 그렇지 않다.
급식을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는 종종 입맛은 어릴 때 길들여지므로 어릴 때부터 제대로 먹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급식을 통해 아이들의 입맛이 제대로 자리잡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먹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 종종 각종 수단을 써서 억지로라도 먹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급식에 대해 불평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학교 근처 매점이나 분식집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큰일이다’라고 되내기만 하면서 정작 아이들의 입맛이 얼마나 정직한가에 대해 애써 무시해왔던 것은 아닐까?
이렇듯 정직한 아이들의 입맛을 잃지 않고 살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만약 학교의 모든 학부모(중요한 것은 ‘모’만이 아니라 ‘부모’란 것이다)가 돌아가면서 장을 담을 수 있다면 그래서 학교에 장독대를 만들고 그곳에 누가 만든 장인지 팻말을 붙여두고 그 장을 가져다 국을 끓여 준다면 어떨까? 만약 1학년부터 모든 반이 당번인 날 그 반 학부모들이 다함께 모여서 김치를 담는다면 어떨까? 그래서 운동장 한켠에 묻어두고 일주일 또는 열흘 그 김치가 어떻게 맛이 바뀌어 가는지를 직접 아이들이 맛볼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아이들이 이 국의 된장은 누구네 집 솜씨인지, 이 김치는 몇 학년 몇 반 부모의 솜씨인지를 얘기해가면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쩌면 불가능하다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꿈을 꾼다. 솔직히 나는 원료에 친환경딱지가 붙었는지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것이 5년 전 4개월의 도시락싸기에서 얻은 나의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