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보장 되면 언제라도 농사짓겠다"

임석남(경기도 평택)씨

  • 입력 2012.11.05 09:44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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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기 시작 하면서 올해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가 주요 일과가 돼 버렸다. 회사로 치면 전략기획의 영역이다. 시장의 요구정도와 농민들의 작부면적 등을 제대로 알아내야 하는데 농민으로서 그렇게 까지 하기엔 역부족인 면이 많다. 농촌에 자조적인 대표적 말이 “정부가 시키는 반대로 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정부의 농업정책에 대한 오랜 불신의 표현이다. 아무리 잘살게 해준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농민들이 제자릴 지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은 일번국도와 고속도로, 경부선 철로가 지나며 오산천이 흘러 평야지대로 그야말로 천혜의 땅이다. 일제시대에는 쌀공출의 첨병지역이라서 수진농조라는 농민조직의 간부들이 활동한 중심 마을이기도 했다. 지금은 최대소비지인 서울로의 접근성이 좋아 오래전부터 논농사보다 고등과채류 재배가 고소득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너도나도 토마토며 가지, 오이, 엽채류 등을 재배해왔다.  

▲ "20년 농사를 지으며 드는 가장 원초적 문제는 가격이었다. 생산비가 보장되려면 시장에만 맏겨서는 될 수 없다. 농업의 공적기능을 최대한 확장해 시장과 정부수매가 적정히 이루어 져야 한다."
1990년 제대를 한 후 아버지께서 짓던 논에 하우스를 짓고 오이재배를 시작했다. 한 상자에 만원 가까운 가격은 그야말로 농사를 지어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 지방에서 오이가 올라오기 시작 하자 3천원 심지어 5월에는 수확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오이만 3년을 했다. 93년부터는 방울토마토재배에 들어갔다.

마침 김영삼정부는 농어촌구조조정 정책자금을 풀기 시작했다. 그때 난방기와 스프링클러 등 하우스자동화사업을 했다. 방울토마토도 그런대로 수지를 맞췄다. 그러나 시장의 장세는 요동을 쳤다.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 없게 장세가 폭락과 폭등을 거듭했다. 그 이유는 상장경매였다. 농산물의 시장공급이 1%만 많아도 가격은 폭락하고 1% 모자라면 폭등하는 것이다. 

후계자 자금과 모아둔 돈으로 한 구간의 논을 더 장만하고 또 시설자금을 내어 하우스를 지었다. 방울토마토만 12개의 하우스에서 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97년인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방울토마토는 한숨만 나왔다. 그야말로 눈물방울 토마토였다. 생산비를 잘라먹는 상품가는 농민들을 부채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농협의 독촉장과 보증인들의 성화에 한구간의 땅과 하우스를 넘겨야 했다. 농업에 희망을 불어 넣고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던 정부의 구호는 알고 보니 구조조정이었다. 빚에 발목 잡힌 구조조정은 농촌을 인정도 사정도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농사를 그만둘까 망설였다. 그때 힘이 된 게 아내였다. 아내의 고집에 다시 힘을 내어 농사를 하겠노라 결심하고 단종목이 아닌 다종목으로 전환했다. 풋고추와 가지, 토마토, 애호박 등 작목을 전환 또는 병작을 했다. 시장만 의존해서는 가격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일번 도로변에 과채가게를 열었다. 그것도 혼자서는 될 일이 아니다 싶어 이사람 저사람 같이 시작했다. 생산과 판매를 동시에 하는 작목반이 된 것이다.

처음엔 관심을 갖는 주부들이 들락거렸다. 그런데 손님들이 차츰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이유는 가격문제였다. 생산자가 직접파는 직거래니까 좀 싸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마트들의 수입농산물과 저가판매로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전략에 농민은 손을 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차츰 발길이 끊어지고 작목반도 흥미를 잃어 해체되고 말았다.

농사를 지은 지 3년 만에 농사를 계속하는데 방해물들이 보였다. 우선적인 것이 저농산물가격정책 이었다. 가격이 좀 오른다 싶으면 바로 해외에서 들여와 가격을 낮춰 버린다. 어느 품목이든지 모든 농산물에 그런 룰이 정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다 항시적으로 열려버린 시장은 더 이상 농민들을 버티지 못하게 했다. 이웃의 적잖은 사람들이 농사를 그만두고 마을을 떠났다. 농사규모를 키우고 시설투자를 많이 한 사람들이 더욱 견디지 못했다. 거기다가 어깨보증을 선 이웃들이 된벼락을 만나 함께 도산하는 경우들이 늘어났다. 이모든 문제가 농산물가격의 생산비 반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농업은 미래생명산업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농업정책방향은 한곳으로만 쏠려있다. 미국식 자본농업의 틀을 요구하고 이를 통한 경쟁력확보측면만 강조하고 있다. 수출농업과 해외농업이라는 뜬구름 잡는 식의 농업홍보가 농정의 모든 것인 양 왜곡되고 있다. 

20년 농사를 지으며 드는 가장 원초적 문제는 가격이었다. 생산비가 보장되려면 시장에만 맏겨서는 될 수 없다. 농업의 공적기능을 최대한 확장해 시장과 정부수매가 적정히 이루어 져야 한다. 시장만 강조하다보면 몇 안되는 농가들이 문을 닫고 말 것이 분명하다. 농업의 공공영역 확장으로 소득이 보장된다면 농민들은 스스로 투자하게 될 것이다. 길게 내다보고 수익이 나는 구도라면 누가 투자를 무서워하겠는가. 지금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생산기반투자나 시설투자들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농민단체들이 주장하는 기초농산물국가수매제는 어떤 농업정책보다도 비용적 측면에서 유리한 정책이라 생각한다. 국가가 쌀을 비롯한 몇 가지 기초농산물을 선정하고 생산비가 보장되는 선에서 수매하여 학교급식등 공공용으로 쓰자는 것이다. 30%정도의 기초농산물을 수매한다면 시장가격은 안정된다고 본다. 농가의 수익이 정상적으로 안정되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다면 농업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굳이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마다할 일이 없게 될 것이 확실하다.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온다.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면 누가 농업정책을 옳게 제시하고 추진할 것인가를 따져 투표해야할 것이다. 촌무지렁이라고 시키는 대로하고 분위기에 쓸려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농민들이 원하는 공약과 실천 가능한 것을 제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그 정책은 농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로인해 새정부의 농업정책은 그 방향으로 물꼬를 틀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야막에서 임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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