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 패러다임 전환 없이 위기 해결 불가능”

<18>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

  • 입력 2012.10.22 13:02
  • 기자명 최병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라고 농민들의 주체의지를 강조하는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 동시에 ‘내발적 발전’을 강조하는 박 원장은 “농업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않는 한 현재 농업·농촌·농민의 위기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지역화 밖에 없다”라고 밝힌 박 원장을 지난 18일 공주시에 위치한 충남발전연구원에서 만나 농업과 농촌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한도숙 사장, 글·사진=최병근 기자>

한도숙=한국농업이 위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장에서 첫 번째로 느끼는 것이 ‘격차’입니다. 부자 농민과 가난한 농민의 격차가 눈에 보입니다. 또한 농촌 인구의 고령화와 경지면적의 축소가 눈에 보이는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생산물에 대한 가격보장이 안 된다는 것과 더불어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농업의 위기를 가속화 시키고 있습니다.

 박진도=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국민들 전체로 보면 먹을거리의 문제입니다. 현재 먹을거리 위기가 와있지만 국민들이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먹고 있기 때문이죠. 또 하나는 농촌의 위기인데 사람들이 느끼지 못해요. 농촌 상황이 상당히 심각합니다. 어쨌든 농촌지역에서 버티고 살고 있으니까 위기로 못 느끼는 거죠. 먹을거리, 농촌사회가 엄청난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거죠. ‘위기’라고 국민들이 공감하면 해답은 분명히 있어요. 근데 위기를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왜 이럴까, 생각해 보면 굉장히 만성화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40% 수준이던 식량자급률이 현재의 수준으로 떨어지기까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마찬가지로 농촌의 위기도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20년 이상 걸쳐서 진행되어 온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적응이 되어 있는 거죠.

한=우리가 개선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해요. 농업을 사랑하고 아끼는 학자들과 관심 있는 단체가 이야기를 했는데 잘 안됐어요.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가 간척지에 타작물재배를 통해 쌀 수확량을 감소시켜 나가는 정책을 펴다가, 쌀 자급률이 계속해서 떨어지니까 올해 정책을 다시 전환하겠다고 해요. 조삼모사 식으로 하고 있는 거죠. 정책의 일관성도 없고, 깊이 고민하고 만든 정책도 아니라는 반증이에요. 이런 식의 정책을 이명박 정부가 펴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박=각 정부마다 농정 슬로건이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농정 슬로건이 없었어요. 그나마 지금 나온 ‘살맛나는 농어촌’이라는 농정 슬로건도 나중에 나타난 거죠. 각 정권들이 들고 나온 농정 슬로건의 공통점은 농업정책이 전체 경제정책의 하위 정책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경제정책은 일관되게 성장제일주의로 가고 있거든요. 이를 극단적으로 몰고 온 것이 이명박 정부입니다. 국민들이 또 경제성장 하라고 뽑아 주기도 했구요. 이 정부는 성장제일주의를 농업분야에 그대로 적용한 것입니다. 세계와 경쟁하는 농업이라며 극단적인 성장주의를 이야기해요. 이명박 정부에게는 농업에 대한 이념, 철학이 없다고 봐도 되는 거죠.

한=자본주의의 우상처럼 모시는 경쟁력, 이를 토대로 하는 시장으로 (농업이)점철됐습니다. 농업에 대한 무지로 귀결된 것 같아요. 이 정부의 농정을 평가하면서 원장님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대안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충남이 농도잖아요. 3농 혁신이라는 정책적 기반을 박진도 원장께서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3농 혁신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박=1989년 우리나라는 농어촌발전대책을 만들어요. 이의 핵심은 경쟁력 지상주의, 엘리트 중심의 농정입니다. 우선 안희정 지사는 농업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어요. 이에 대한 충남의 발전 계획을 만들어서 안 지사에게 준 것이지요. 그러면서 농정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3농 혁신의 핵심은 농민을 농정의 주체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농정은 농민을 대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실패했어요. 그렇다면 현재 농민이 농정의 주체로 나설 능력이 있냐. 전 없다고 봐요. 없으면 없는 만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중앙정부가 취해왔던 효율성 지상주의를 벗어나야 한다고, 농업의 가치를 키우는 것에 중심을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농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안전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겁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로컬푸드 시스템으로 전환시키고, 친환경농업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했어요. 또 하나는 농민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근데 충남도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은 사실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핵심은 직불금을 확대해서 농업소득을 높여야 하는 것인데요, 직불금은 충남도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정책입니다.

한=제 경험으로 보면, 3농(농업, 농민, 농촌)가운데 농업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세력은 농민이에요. 농민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농정의 주인으로 나설 것이냐, 근데 이게 잘 안 돼요. 이를 보면 지역리더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3농 혁신에 대한 지난 2년 동안의 가시적 성과가 있을 거 같아요.

박=분기별로 평가를 하고 있어요. 가시적 성과는 없어요. 다만 농정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입니다. 매월 1박2일로 ‘3농혁신장’을 해요. 안희정 도지사가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이번 달에는 학교급식 문제를 가지고 하는데요, 학교급식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와요. 당장의 성과는 없지만 학교급식 문제에 대해 충남도와 현장농민들과 이야기를 풀어갈 분위기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한=구체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지만, 이를 만들어가기 위한 여론형성, 3농혁신에 대한 공무원들의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로 들립니다. 충남도가 제시하고 있는 3농혁신 과제를 보면 전국의 문제로 보입니다. 우리 농업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를 위해서는 3농혁신의 비판적 입장들도 수용하고 만들어 가야 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3농혁신이라는 것도 농민을 대상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수평적 연대가 필요한데, 이게 또 다시 수직적으로 간다면 기존의 농정과 다르지 않느냐는 우려도 있어요.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추슬러 갈 계획인가요.

▲ 대선후보 FTA에 대한 입장 밝혀야 농업은 국가가 보호해야 할 영역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 원장이 18일 공주시 소재 충남발전연구원에서 한도숙 본지 사장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박=작년에 3농혁신 계획을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현장농민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계획을 만들려고 했어요. 근데 요구가 없더군요. 훈련이 안돼 있는 상황이었어요. 주민과 행정 사이에 신뢰가 없었던 것이지요. 농민들이 주체가 돼서 일을 추진하고 행정이 밀어주는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데, 현재 우리(충남)의 수준을 이야기하면 아직까지 이게 안 되는 것이 사실이지요. 농정계획을 세울 때 최대한 농민과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요. 농민을 농정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목표지만, 지금은 솔직히 안 되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관에서 해버린 꼴이지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봅니다.

한=우리가 농업을 제대로 된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농업을 신자유주의 도입과정에서 발생되는 장애물로 바라보면서 많은 농민들이 희망을 잃었어요. 그리고 농민들이 고령화 됐습니다. 뭔가 참신한 대안을 가지고 농촌에 가도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지요.

박=안희정 지사도 자신의 고향인 논산에 가서 농민들에게 도와 달라고 말을 해요. 그러면 지역 농민 또는 주민들이 이렇게 말을 해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래. 그냥 도와주고 말아”라고요. 그러면 힘이 확 빠진다고 하더군요.(웃음)

한=농민이 행정을 믿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도 대안을 만들고 또 제안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이런 문제를 극복하면서 18대 대선후보들의 농정 패러다임을 바꿔내야 한다고 봅니다.

박=3농혁신은 도 차원의 고민이 담겨져 있고, 대통령 후보에게는 훨씬 큰 요구를 해야 합니다. 광역자치단체가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할 방법이 없어요. 따라서 직불금 문제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또 ‘국가먹거리기본계획’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충남이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선후보들이 FTA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이런저런 핑계로 슬슬 수입개방 해 온 것이 지금 농민 피해의 원인입니다. 지나간 건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한중FTA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한·미, 한·EU FTA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또 광역자치단체도 일을 해야 하는데, 충남의 경우 3농혁신과 같은 계획을 만들었지만 다 립서비스에 불과해요. 충남도가 할 수 있는 예산이 없어요. 중앙에서 예산을 짜서 내려오기 때문이죠. 철저하게 농정분권을 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농민들이 어려움에 빠진 이유인 개방농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고, 어쨌든 지방의 문제는 지방 스스로 해결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박=정책은 제도와 예산입니다. 충남이 1조 1천억원 정도의 예산을 쓰는데요, 이중 충남도가 1천2백억원을 쓰고 있어요. 충남도가 국비 매칭으로 600억원을 쓰고 있지요. 정책다운 정책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에요. 지역의 일을 지역에 맡기고, 농민의 일은 농민에게 맡기라는 것입니다. 중앙정부가 그동안 수십년 잘못했으니 이제 잘못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한=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FTA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특히 농업부분은 개방해서 안 됩니다. 역사를 되돌리기 어렵지만, 농업에 대한 자유무역체제를 WTO(세계무역기구)체제 이전으로 돌려야 합니다.

한=농산물 가격만 보장되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과 같이 FTA가 진행된 상황에서 시장에서 결정된 농산물가격이 농민소득을 보장 해주는 것 자체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박=정부는 예산이 제약됐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는 돈 쓰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지금의 예산 가운데 SOC를 포함하는 간접보조가 많은데요, 이를 대폭 줄이고 농민에게 직접 주자는 것입니다. 현재의 예산구조 가운데 상당부분을 농민에게 직접보조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한=18대 대선을 바라보면서 농업문제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제언과 농민에게 희망의 말씀 한마디 해 주시지요.

박=농업을 단순한 산업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이 국민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지역경제의 뿌리, 환경보호, 교육·휴양 등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농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농업은 한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로 되기 위해서 국가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는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국가가 해야 하는 것이지요. 두 번째, 장기적으로 보면 농업의 가치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담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거칠지 모르지만 살아남는 사람이 빛을 보는 것이지요. 사실 농업에 희망이 있는데, 지금 농업이 어려워지고 국가가 농업을 포기하니까 농민들이 좌절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계화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지역화 밖에 없습니다. 세계화에 대한 대응은 지역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인식 확산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농업은 국가의 기반인데, 이제부터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원장님의 역할도 클 것 같습니다. 3농혁신이 새로운 농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는데 주춧돌이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바쁜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