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들어서는 골프장, 농민은 어디로

녹색사막 골프장, 주민들 삶의 기반 흔들어
노숙농성 1년, 강원도지사 골프장 재검토 공약 모르쇠

  • 입력 2012.10.21 21:48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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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구만리는 강원도지사와 춘천지방검찰청장이 1994년에 선정한 범죄 없는 마을이다. 그러나 2012년 현재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구만리에 전과자는 27명이다. 골프장이 결정된 이후로 사업자와 산림청은 골프장에 반대하는 주민을 상대로 고소 및 소송을 제기해 소송 7건, 소송비용만 1억3,000만원에 이르고 있다. 400여년 집성촌을 이뤄 잘 살아온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려 이웃사촌이 적이 되고 범법자가 됐다.

구만리 김순자(78) 씨는 “구만리는 내 고향이다. 태어나서부터 여태 여기서 살았다. 골프장이 동네를 망가뜨리고 있다. 이웃사촌이 말도 안 하고 사니 이게 사는 거냐. 골프장이 들어선 동네는 다 똑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골프장 예정지 바로 밑에 산다는 민숙자(47) 씨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이 어딜 갈 수 있느냐”며 골프장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원도에는 골프장이 난립하고 있다. 현재 강원도 내에 총 49개의 골프장이 영업 중이고,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골프장은 23개, 인허가 절차에 있는 것이 11개에 이른다. 홍천 구만리 같이 골프장 건설을 둘러싸고 사업자와 수년째 갈등을 빚는 곳은 홍천 동막리, 갈마곡리, 강릉의 구정리, 원주의 구학리 등 한두 곳이 아니다.

▲ 골프장은 건설 승인이 나도 문제가 되고 있다. 시행사의 재정능력과 경영수익성이 검증되지 않다 보니 공사 도중 부도가 나거나 운영적자가 나고 있다. 시공사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춘천시 혈동리(사진). 기존에 살던 24가구는 이주했고, 5가구는 토지강제수용으로 소송 중이다. 방치된 공사장은 비가 오면 흙이 시뻘겋게 흘러내리고 있다. 춘천시 조양리에는 산요수웰니스카운티 골프장이 들어섰지만, 업자가 돈이 없다고 약속한 보상을 미루자 주민들이 나서 “회원권 좀 제발 사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최병근 기자〉
사전 환경영향평가 불·탈법으로 얼룩… 주민피해 고려하지 않아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7개 마을이 함께 꾸린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는 불·탈법 인허가 골프장 즉각 취소를 요구하며 강원도청, 원주시청에서 1년 가까이 노숙농성 중이다.

홍천군청 노숙농성은 60여일 이어지고 있다. 골프장 예정지역이 이렇게 몸살을 앓는 주된 이유는 골프장이 주민의 삶과 환경을 크게 바꿔놓는데도 사전절차인 사전 환경영향평가와 산림조사가 부실해서다. 주민피해도 적정하게 고려되지 않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골프장은 녹색사막으로 불린다. 18홀 골프장(1,000ha)을 만들기 위해서는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베어져 숲과 멸종위기동식물이 사라진다.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다량의 농약이 뿌려지고, 과다한 용수 사용으로 지하수를 고갈시킨다. 농사짓고 사는 주민은 수질오염, 지하수 고갈, 지역공동체 갈등으로 생존기반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런데도 골프장 사업자가 작성한 사전환경영향평가 대부분이 보호 야생동식물을 축소·은폐했다.

특히 홍천 구만리는 보호 야생동식물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환경단체 조사결과 삵, 하늘다람쥐, 말똥가리 등 멸종위기 종 상당수가 발견됐다. 원주 구학리는 문서상의 날짜에 산림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조사결과를 허위로 작성하는 문서조작이 이뤄졌다.
홍천 갈마곡리는 홍천읍과 골프장 거리가 450m에 불과한데도 읍민 농약피해를 검증하지 않았다.

▲ '골프장 이제 그만, 강원 살림 아우성, 최문순 도지사 불·탈법 인허가 골프장 전면취소 촉구대회' 삭발식. 조인자 홍천 월읍리 대책위 부위원장은 눈물로 골프장 건설 중단을 호소했다. 〈사진=최병근 기자〉
최문순 도지사 골프장 재검토 약속 지켜야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는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생명버스가 지난 13일 13차를 맞았다. 이들은 춘천역 앞에서 ‘골프장 이제 그만, 강원 살림 아우성, 최문순 도지사 불·탈법 인허가 골프장 전면취소 촉구대회’를 열고 최 도지사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최문순 도지사가 지난 보궐선거 당시 “주민 동의없는 골프장 개발 반대한다. 문제가 있는 골프장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날 대책위 대표자 8명은 삭발식을 진행했다.

조인자 홍천 월읍리 대책위 부위원장은 “노숙장 지키느라 성묘도 못 갔다. 20일이면 노숙농성 1주년이 된다. 농사짓느라 동이 터 해가 질 때까지 바쁜 주민이었는데 이제 골프장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

도지사는 골프장 해결공약 이행하라”며 통곡해 집회는 일순간 눈물바다가 됐다. 최문순 도지사의 공약 이행촉구와 골프장 건설 반대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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