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벨상 소동과 농업

  • 입력 2012.10.15 09:49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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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시절이 되었나 보다. 언론매체에서 어느 나라의 누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여전히 과학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으로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원인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도 등장한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연구하는 것이 노벨상 받기 위한 것도 아니요, 또 모든 평가의 기준이 노벨상인 것도 아님은 분명한데 역시 이렇게 시끄러운 것을 보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갖기 쉬운 일종의 미련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G20 국가 가운데 노벨과학상을 수상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6개국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말 한마디에 정부는 그냥 장래성 있는 젊은 과학자에 대한 지원이라고 하면 될 것조차 굳이 노벨과학상 수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우스꽝스런 대국민 홍보용 행정을 한 기억도 새삼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국내의 미련이든 정치권 쇼에 불과하든 분명히 노벨상이 일종의 국제적 인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과학계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물론 일반 세간에서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렇게 국내의 학계도 아닌 정치권과 언론마저 소동을 벌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국내의 이런 노벨상 소동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웃나라인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전혀 없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 원인이 있다고 보인다.

어쩌다 보니 필자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 유학을 가서 일본과 미국에서 각각 만 오년 정도씩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일본의 과학연구 체제와 미국의 과학연구 체제를 경험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식 전통의 바탕을 지닌 것이 일본이라면 2차 대전 이후 국제과학계를 이끄는 것은 미국이었다. 일본학계와 미국학계를 비교해 본다면 어느 쪽이건 나름 긴 시간에 걸쳐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각각에 맞는 형태로 형성된 것이기에 그 어느 쪽이 완전하다기보다는 두 나라의 제도나 과학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

한편 한국은 일본 식민지 시대의 배경을 지닌 채 해방 후 급격히 유입된 미국식 제도의 표면적 이식이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긴 역사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과학문화가 자리 잡았다기보다는 외부로부터 강제적으로, 혹은 급히 유입된 두 나라의 학문 문화를 수용하게 되었고, 두 문화권의 진수는커녕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로 이어져왔다. 더욱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거쳐 관주도의 사회 문화풍토에서 학문연구에 있어서도 정치적 요소의 개입이 현저한 형태가 되어 버린 한국연구체계는 최소한 기초연구에 있어서 말한다면 두 문화권의 단점만 모아놓은 형태다.

튼튼한 학문적, 재정적 기반도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으로 산학협동이라는 산업계와의 연계와 무한 경쟁을 표방하고 국립대학마저 법인화로 전환시키는 풍토에서 학문 연구의 공공성은 사라지기에 인류 복지와 생태문제를 해결한 참신한 과학연구가 나오기는 어렵다. 더욱이 연구기관에서 1년 단위의 연구자 평가로 어떻게 당장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 미지 탐구의 숨이 긴 근본적인 과학연구가 이루어질 것인가.

한 나라의 과학수준이란 특정 몇몇 과학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장기간의 투자를 통해 학계 전반의 수준을 높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내부 역량이 차오르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낸 여러 나라를 보면 분명하다. 불행히도 국내 정치권이나 정치권에 유착되어 과학연구비 분배나 지원을 담당하는 일부 과학자들은 이런 국내 과학역량을 키울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뭔가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 몇몇 스타 과학자에만 집중 지원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사회의 이런 식의 접근은 과학연구만이 아니다. 주권국가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최소한의 국가 주체성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나라는 당장 돈이 되는 몇몇 산업 분야만 생각하고 국가 유지의 가장 근간이 되는 장기적 식량자원 확보에는 무관심이다. FTA 추진 속에 농축산에 국가적 투자는 방기되었다. 그런 면에서 매년 벌어지는 국내의 노벨상 소동과 농업과 축산인의 눈물은 서로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같은 문제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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