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기본교육, ‘농’가치부터 가르치자

  • 입력 2012.09.24 09:13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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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 1996년부터 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 2001년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유전자조작농산물의 위험과 먹을거리에 대한 강의를 했다. 얘기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처음 남들 앞에 섰을 때의 마음가짐은 두 경우 모두 나름 내가 아는 것을 되도록 많이 알리기 위해 진지했고 혹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면 어찌할 것인가 긴장했다. 2011년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정된 후 많은 단체에서 식생활 교육강사를 양성하기 위한 강좌가 진행 중이다. 물론 상당수의 직거래 단체, 예컨대 생협과 한살림 등에서는 훨씬 전부터 이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런 강사교육 가운데 상당히 많은 곳에서 나도 유전자조작농산물에 대한 강의를 해왔음은 물론이다. 수강생들은 다른 어떤 곳의 수강생보다 진지하고 또 열정적이다. 하나라도 더 알고 이를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항상 감동을 받곤 한다. 그래서 강의 시작에 항상 강조하는, 그들의 진지한 열정에 대한 나의 보답은 이것이다. ‘왜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지 그 원인에 집중해라. 그러면 외울 필요가 없다.’

사실 식생활교육의 상당부분이 먹을거리의 위험성에서 출발한다. 비교적 단기간인 교육 프로그램은 왜 이런 위험성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보다는 결과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에 집중된다. 그래서 수강생들은 무엇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짝을 지어 외워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을 알면 그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하고 굳이 외우지 않아도 답이 나올 수 있다.

오늘날 위험한 먹을거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80년대까지는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럼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왜 이런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게 된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우리 농업정책과 밥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루과이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우리에게 바뀐 변화 딱 세 가지만 들어보자. 우선 농축산물의 수입량이 할당되었다. 소비자들은 굳이 원료농산물을 수입농산물로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에 수입업자도 굳이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 유통공사가 이를 대신한다. 두 번째로 이렇게 쌓인 수입농산물을 한꺼번에 소비하기 위해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이었던 농산물가공산업에 대해 대기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렇게 대기업이 농산물가공시장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은 대규모 공장을 짓고 그 공장에 필요한 원료를 수입에 의존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지위향상은 부엌으로부터의 해방을 부추기고 부엌노동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이 만들어준 가공식품을 밥상에 올리는 해결책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문화 속에 자리잡았다. 그때부터 우리는 먹을거리의 안전을 걱정해야 했다. 즉,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그래서 구멍난 밥상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수입하는 농축산물로 대기업이 가공식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그 해결방안을 가족공동체, 지역공동체, 지방정부, 중앙정부가 함께 고민하지 않고 기업이 만들어주는 식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으로 대체한 것이 문제란 말이다. 먹을거리는 양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하고 질적으로 안전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안심하고 밥상을 차릴 수 있다. 아무리 FAO(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먹을거리문제의 해결을 위해 ‘양’에 집착하고 이를 위해 먹을거리 무역의 활성화를 주장하더라도, 농산물 수출국이 아무리 자신들이 이를 책임질 것이라고 공언해도 거기에서 해결방안을 찾아서는 안 된다.

아무리 편리하고 아무리 바빠도 자본에게 우리 밥상을 맡겨서는 안된다. 애초 이를 따랐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이었던 80년대 이전의 우리 밥상을 찾을 때이다. 그리고 이런 밥상의 원천은 인구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던 시절부터 꾸준히 ‘농’을 버리지 않았던 농민에게 있다. 농산물을 사주는 소비자 덕에 농민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농산물을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생산해 주는 농민이 있기에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먹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벼가 자라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기본교육, 적어도 출발은 여기에서부터라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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