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플레이션·FTA, 그리고 정부

  • 입력 2012.08.20 09:39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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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등의 주요 농산물 생산국에서의 가뭄으로 국제 농산물 가격의 급등이 예상되고 있음이 뉴스에 오른다. 정부도 올해 농수산물 가격안정기금을 증액해 2조3500억원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곡물 수입 관련 금융 지원 규모도 32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린다고 한다. 물론 이런 임시 조치는 장기적 대책이 아니다. 미래의 기후변화, 국제 곡물시장의 유동적 흐름, 그리고 국제곡물시장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다국적 식량회사 등을 고려할 때 장차 있을 식량전쟁에 대비해 한국은 장기적이고 구조적 대책이 필요하다. 사람 식량과 더불어 사료 공급에도 연계되어 국가 간의 총체적 종속관계 형성에 작용할 것이기에 이것이 지니고 있는 폭발력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일본만 해도 국제적으로 지적을 당해도 비싼 비용을 감당하면서 기본적인 자국의 식량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도 신강성 등의 척박한 농업지구에는 농민들에게 땅뿐만 아니라 정착금과 경작 비용마저 지급하면서 식량 생산 기반을 정착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미래의 식량전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그 대책이 FTA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농축산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조달하는 방식이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한편 에콰도르가 미국 비밀외교문서 폭로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했다는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무심히 들으면 전혀 우리들과 상관없는 먼 나라 일처럼 들리지만 상황의 전체적 흐름을 알고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무척 흥미롭다.

미국 비밀외교문서가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되면서 수많은 나라는 공황에 빠졌다. 많은 국가 권력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겉으로 한 말과 실제 행동한 내용이 얼마나 다른 지 명명백백하게 노출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기밀 9만여 건을 포함해 중동 및 전 세계의 수십만 건의 비밀정보가 있었다. 카다피의 몰락 등 최근 일련의 중동 사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출된 내용에는 한국과의 비밀외교문서도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2008년도 현 정권이 진행했던 미국 쇠고기 수입 졸속타결의 전모를 추정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그의 도움으로 드러난 2008년도 미국쇠고기 수입 졸속 타결의 전모를 살펴보면 현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 취해왔던 얼굴을 들 수 없는 참담한 한국외교의 모습과 더불어 국내 식량기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잘 나타난다. 한미FTA 타결을 전제로 진행한 미국 쇠고기 졸속수입이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가 주장했던 비과학적 내용과 더불어 당시 취했던 행동 하나하나는 결국 자국의 이익만을 고려한 미국 대사관의 의견을 하수인처럼 그대로 전달한 것임이 ‘위키리크스’의 미국비밀외교문서에 들어있다. 간단히 말하면 미국 쇠고기 수입 타결에 있어서 현 정권은 자국 식량기반 등의 한국민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했던 것이 아니라 완전히 미국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기에 단지 정권만이 바뀌었을 뿐인데 정부 관련공무원들은 광우병과 미국 쇠고기에 대해몇 개월만에 입장을 정반대로 바꾼 채 국민에게 거짓말하게 된 셈이다.

구체적 내용은 생략하지만 당시 정부는 미국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는 세계동물보호기구(OIE) 규정에 대한 왜곡, 전염병 예방에 필수적인 유비무환의 잠재적 위험(사전예방원칙)에 대한 왜곡, 과학적 사실(연구내용에 불과한 것을 과학적 사실처럼 호도)에 대한 왜곡 의도를 지니고 진행했고, 이에 일반인들의 통상적 고정관념을 교묘히 이용해 정부 스스로가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며 조만간 사라진다는 괴담을 유포했다. 당시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도 과학적이고 전문가의 검토를 거친 한국정부의 의견이 아니라 전적으로 미국 대사관의 입장이었다. 심지어 대만이 한국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협상을 타결하자, 정부는 국민들과 약속을 지키기보다는 오히려 외교부 지역통상국장을 미국대사관으로 보내 정부 약속에 따라 국민들이 쇠고기재협상을 요구할 것 같으니 대만에 압력을 넣어 달라고 미국에 하소연하는 추태도 드러난다.

당장 벌어질 소위 애그플레이션도 예상하지 못하고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자국의 농축산 식량기반에 대한 정부는 훗날 우리의 미래세대에 대하여 무어라 변명할 것인가? 장기적 대책으로 일정비용을 감당하더라도 기본적인 자체 식량기반을 확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정부는 당장의 수익타산을 기반으로 미래 식량전쟁에 대한 대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이 미국비밀외교문서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정부 자세는 한EU FTA와 한중FTA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 과정 중에 우리의 미래를 위해 보호되고 존중되기는커녕 희생되고 철저히 버려진 국내 농축산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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