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또 재해, 보험이 대안?

  • 입력 2012.08.13 09:09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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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기말고사 기간인 5월에 우박이 쏟아졌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 우박을 처음 본 나는 학교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몇 발자국 걷다가 건물에 숨기를 반복하며 10분 거리를 약 30분이 걸려 학교에 도착했다. 약 1시간 가까이 쏟아진 우박으로 인해 보험회사가 난리가 났다.

길에 세워둔 차들이 우박으로 모두 패어버린 것이다. 이 차들이 모두 원상복구를 위한 보험을 청구했고 며칠 그 청구를 받아주던 보험회사는 결국 열흘 만에 모든 보험금 지급을 동결하고 원상복구가 아닌 정액지급으로 방침을 전환했다.

당시 일찍 서두른 이들은 제대로 보상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복구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결국 수리를 포기하고 그냥 패인 채로 몰고 다니는 경우도 꽤 있었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보험의 실체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올해와 같은 더위는 처음이란 말을 모든 사람들이 한다. 이 더위에 농작물은 타들어간다. 전북에서는 고창을 비롯한 전역에서 수박이 더위로 터지는 심각성을 보도했다(더우면 수박이 저절로 터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어디 수박뿐이랴. 전국의 농작물들이 마찬가지일텐데, 축산농가는 이미 140만 마리 이상을 폐사시켰다고 한다. 4대강은 녹조가 심해져 당장 식수가 문제고, 바다는 적조가 심해서 양식업이 문제다. 그 원인이 4대강이건 폭염이건 간에 말이다. 예전에는 비가 안오면 왕이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다.

먹거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가 안오면 보험으로 해결하란다. 이미 가축 폐사에 대한 기사 중 상당수는 가축재해보험의 폭염특약에 가입한 축산농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체 축산농가가 약 8만, 그 가운데 약 천여 농가만이 이 특약에 가입했으니 턱도 없는 수치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보험상품이 농협을 제외하고는 어떤 보험회사에도 없다는 점이다. 그 많은 보험회사들이 온갖 보험으로 국민들을 전화로 괴롭히면서 정작 이 보험은 다 꺼린다. 물론 이는 2002년의 태풍 ‘루사’로 인해 이런 종류의 재해보험은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때문이다.

이제 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왜 문제인지 딱 2가지만 보자. 첫째 문제는 보험의 본질이다. 보험이라는 것이 위험에 대비하여 상호부조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이미 보험은 이를 ‘업’으로 하는 보험회사가 생긴 이후 더 이상 상호부조가 목적이 아니라 보험회사의 이윤이 목적이 된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게 뻔히 돈이 안되는 줄 아는 것을 강요하지 못한다. 법으로 정해진 농작물재해보험은 보험료 수입보다 보험금 지급이 180%가 되어야 그때에서야 국가가 그 손실을 보상해준다. 어느 보험회사가 2배 가까이 손해보는 장사를 하려 하겠는가 말이다. 그저 만만한 것이 농협이다.

두 번째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이다. 농사가 더 이상 천하의 근본이 아니고 단지 산업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 농업에 관한 모든 것도 바뀌었다. 국민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니 먹거리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농업에 붙는 단골메뉴는 ‘경쟁력’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누구와 어떻게 경쟁하라는 말인가? 물론 정부가 말하는 이 ‘경쟁’은 누가 더 많이 먹여 살리는가가 아닌 누가 더 돈을 많이 버는가의 경쟁이다. 그래서 내 이웃농가와 경쟁하고 내 이웃나라와 경쟁하고 세계와 경쟁해서 이기지 못하면 퇴출이다. 사람들은 오늘날과 같은 재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말한다.

지구상에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연 생태계에는 없는 것들을 굳이 만들어서 먹고, 입고, 잠자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더 편한 삶을 위해 막고 메우고 파고 덮고 묻고 자연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산업화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이라는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저 지금보다는 안 나빠지길 바라지만 여전히 내일은 오늘보다 나빠진다. 보험이라니. 도대체 자연재해까지,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인 인간의 잘못까지 꼭 이렇게 돈벌이 대상으로 삼아야겠는가 말이다. 좀 더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는 대안을 만들 수는 없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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