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까지

  • 입력 2012.07.16 11:12
  • 기자명 이재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은 서울에서 ‘한중FTA중단 전국농어민결의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버스 근처에 다다르니 먼발치에서 벌써 몇몇 분들이 나와 서 있는데 말쑥한 차림의 농민들과 장화바람 그대로인 농민들의 모습이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반갑게 눈인사 손 인사를 나누고 보니 장화바람 농민들은 비 온다는 소식에 농사일로 도저히 집회에 참여는 못하겠고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배웅 나오신 사연을 쏟아 놓으신다. 부득불 사정상 못갈 때의 심정이 얼마나 무겁고 불편한지 그 마음 짐작하고도 남는다.

서울 서소문에 있는 농협중앙회에 도착했다. 농민들은 웬지 여기만 오면 뱃속부터 울화가 치미는지 모르겠다. 머리에는 ‘비료값 담합, 1조6,000억원’이 떠올라 어금니가 저절로 앙다물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농협중앙회는 없어졌다. 신경분리를 해 놔서 금융지주회사·경제지주회사로 이미 나눠놓고 돈놀이 이윤추구가 지상목표가 되어버렸다. 정권의 하수인, 돈창고 역할도 모자라 협동조합 정신까지 헌신짝 내던지듯 한 방에 내던진 것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집회장은 농민뿐만 아니라 농협관련 노동조합원들도 많이 참여했다. 내용은 하나같이 농협중앙회 규탄과 촉구였지만 농협의 진정한 협동조합의 의미와 정신을 우리 손으로 반드시 되찾자는 각오와 결의였다.

시청광장에서 대회를 마치고 서울역 행진이 시작됐다. 간간이 내리던 비는 서울역에 거의 도착할 즈음, 폭우로 변하여 시야는커녕 비옷 위로 때리는 빗방울이 아플 정도로 심하게 내렸다. 그러자 농민들은 환호성인지 울부짖음인지 엄청난 소리를 한꺼번에 내질렀다. 그 때의 심정을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지독한 가뭄의 비라 임만큼 반갑기도 하고 “야 이**들아 아직 우리 살아있어!” 그런 비슷한 것이었다.

한중FTA협상이 열리는 제주에 도착해 간단한 요기를 하고 11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전여농 사무총장님의 안내로 컨벤션홀 앞의 협상중단 집회장에 자리를 잡고 바다 건너 온 만큼의 가슴과 열의로 집회에 집중했다. 집회가 끝나고 협상이 열리는 롯데호텔로 행진을 시작했다. 따라오던 행렬과 그 깃발에 가슴이 턱 하는 느낌이었다. 어제 서울역 직전 폭우에서 느꼈던 그 광경과 함께 그 뭉침, 단단함, 기쁨, 환희, 분노, 장엄, 지침, 끈질김, 생명......뭐라고 해야 그걸 전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낱말을 늘어놓아도 성에 안차는 그런, 그런 뭔가가 가슴을 막 두드린다. 행진 도중 전농 동지들은 협상장 뒤편을 순간 타격했고 계속 협상장으로 향하던 대오의 전여농 동지들은 두 줄로 늘어서 있던 바리케이트를 넘어 저지선을 뚫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전개했다.

전농이 4일 여덟시 삼십분에 투쟁을 벌였다길래 설마 정문은 우리가 가는데 정문은 아니었겠지. 여덟시 오십분에 전여농에서 협상장인 롯데호텔 정문돌파를 시도했다. 호텔 정문 도로변에서 여성농민 기질로 시작은 하였으나 5분을 버티기 힘들었고 급기야 경찰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 인도로 밀려 나왔다. 인도에 갇힌 우리는 그냥 그걸로 말 일은 아니었다. 극렬한 몸싸움과 우리의 의사전달을 위해 갖은 힘을 다 쏟았다. 10시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의 투쟁도 대회장으로 옮겨 마무리 하였다. 한중FTA중단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결코 빈말이 아니다. 언제나 그래왔듯 농민의 ‘근성’으로 대처할 뿐이다. 이재현 전북 완주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