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밭농업직불제, 반쪽짜리 된 사연

농민 요청 5년만에 시작부터 ‘개정’ 논란
지난해 심었던 밭작물 지급 약속도 불투명

  • 입력 2012.07.09 08:5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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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도가 시행하는 ‘밭농업직불제’는 중앙정부 보다 지원범위를 넓혀 시설하우스도 포함한다. 하지만 농민들이 요구했던 면적기준이 아닌 품목기준으로 변경 시행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밭농업직불제가 저조한 신청률을 보이며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전북도에서 자체 시행하는 ‘전북 밭농업직불제’도 개정 논란에 휩싸였다.

 

전라북도(도지사 김완주)는 올해부터 밭농업직불제를 시행한다. ‘전국 최초’ 밭농업직불제는 타 도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5월 말 1차 접수완료 후에 6월 말 연장접수, 7월 첫 주 추가접수까지 접수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6월 말 접수된 상황만 전체 밭면적 3만2천468ha 중 5천771ha로 18%를 기록했다. 중앙정부의 밭농업직불제 신청면적은 7천212ha로 22%를 나타냈다. 중앙과 전북도 사업 모두를 합쳐도 신청 규모는 전체 면적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왜 이렇게 신청이 저조했던 걸까?

5년만에 생명 얻은 밭농업직불제 시행부터 ‘잡음’

전북에서 밭농업직불제를 시행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개방화 시대 수입농산물의 영향으로 국내 농업기반이 급격히 약화됐고, 농촌은 신규인력이 모이지 않아 연로해졌다. 이 때문에 전북 농민단체들이 농가소득 보전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하고 소득작목인 밭농사에 대한 안전장치로 ‘밭농업직불제’를 요구하게 된다.

결국 전북도의회는 2008년 10월 민주노동당 소속 오은미 의원 대표 발의로 ‘전북 농업인 소득안정을 위한 농업소득보전지원 조례’를 제정·공포했다. 이 조례엔 직접지불금을 최소 단위 1㏊를 기준으로, 2000년 1월부터 농업에 종사한 농업인한테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밭직불금’이라는 직접적 표현은 없으나 실제 밭직불금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전북도는 2009년 11월 농촌경제연구원에 의뢰한 시행연구 용역 결과를 통해 “2013년 중앙정부 밭직불금 시행 예정 등의 이유로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전하는 한편 제도시행을 위해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며 빨라야 2012년 시행될 것이라는 유보적 입장을 보여왔다.

2011년 9월 전북도는 “밭농사를 짓는 농민들 중 소득을 파악해 차등지급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공청회를 시행했다가 농민단체의 강력한 제지를 받고 폐기했다. 농민단체가 원하는 밭농업직불금은 쌀직불금처럼 밭면적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전북도는 2012년부터 밭농업직불제를 시행하며 0.1ha 이상 밭을 경작하는 도내 농가에 1ha까지 면적비례로 직불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예산은 65억원으로 책정하고 이 중 전북도가 20억원, 나머지 45억원은 각 시·군이 자율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또 2011년도에 심은 밭작물에 대한 직불금은 전수조사를 거쳐 2012년 10월에 지급키로 했다. 단 중앙정부가 한미FTA 대책으로 밭농업직불금을 시행할 경우 도 자체사업은 전면 중단된다고 덧붙였다.

2011년분 밭농업직불금 “지급 약속 지켜라”

변수가 발생했다. 중앙정부가 한미FTA 피해대책으로 ‘밭농업직불제’를 확정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밭농업직불제는 19개 품목을 대상으로 ha당 40만원이고 개인농가는 최고 4ha까지로 한정된다.

지난 5월 전북도는 ‘2012년 전라북도 밭농업직불제 시행지침서’를 확정했다. 지난 해 농민단체들과 약속했던 내용의 상당수가 달라진 ‘돌연변이 직불제’가 탄생한 것이다.

전북도가 발표한 내용은 시행지침에 적합한 밭과 과수원 농지를 대상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19개 품목은 제외하며 △고추 등 시설재배도 지원한다는 것. 이 과정에서 현장 농민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지난 해 농사지었던 밭작물이면 품목에 상관없이 올 10월이면 직불금을 받겠다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농민들은 ‘돌연변이 직불제’에 대해 “엿장수 맘대로”라고 힐난하고 있다.

‘밭농업직불제’ 도입을 이끌었던 오은미 의원도 지난 5월 전북도의회에서 “전북도가 약속했던 2011년분 밭직불금 20억원에 대한 명확한 지원을 촉구한다”며 발언에 나서기도 했다.

오 의원은 “20억원을 본예산에 반영”까지 한 전북도가 “정부의 방침을 핑계로 오락가락”한다고 질타하며 “정부가 지원하는 19개 품목에 대한 도비지원을 중복지원이라는 이유로 제외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국비 도비 시군비를 (전북도가 자체 시행하는)쌀직불금처럼 지원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 친환경유통과 이성태 주무관은 “중앙정부의 밭직불제를 보완해 설계했다”면서 “담배를 포함해 기호식품을 재배한 경우까지 다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장 농민들은 다 좋아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중앙정부의 밭직불금 제도 시행과는 무관하게 전북도만의 제도를 시행할 것과 지난 해 밭농사 전부에 대한 직불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따라서 지금 전북도가 확정한 시행지침서는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은 상황이다. 전북도가 전국 최초로 밭농업직불제를 시행한다는 떠들썩한 언론보도 뒤에 가려진 18%대의 저조한 신청률이 이런 논란을 입증하고 있다.

 

▲ 이효신 전북도연맹 정책위원장(왼쪽)과 오은미 전북도의원

※ 인터뷰- 오은미 전북도의원 · 이효신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위원 “전북 밭직불제, 쌀직불금처럼 하라”

한중FTA 2차 협상이 제주에서 시작된 3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농민들의 함성 속에 오은미 전북도의원과 이효신 전농 전북도연맹 정책위원장도 함께 하고 있었다. 몰아치는 FTA 광풍 속에 농민들의 소득 보전을 위해 오 의원과 이 정책위원장은 ‘전북도만의 밭농업직불제’라는 결실을 맺었으나, 시작부터 삐그덕 거리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중앙정부의 밭직불제 시행으로 일그러진 전북도의 밭직불제를 다시 원형대로 복구하는 게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전북 밭직불제가 내용만 보면 정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오은미 의원 : 그렇지 않다. 착시현상일 뿐이다. 없던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끝난 게 아니다. 시행방법을 두고 전북도와 5년을 싸웠다. 지난 해 말 소득기준 차등지급하겠다는 전북도의 원안을 쌀직불금처럼 ‘밭’에 재배되는 ‘모든 작물’로 하자는 데 합의를 했다. 그런데 현재 확정된 안은 정부가 지원하는 19개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이라는 단서가 첨부되면서 농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시행 내용이 바뀌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이 발생한 건가?

이효신 정책위원장 : 지난 해 밭작물 전체에 대해 직불금을 주기로 해서, 도비 20억원을 올해 본예산에 편성했다. 그런데 갑자기 품목으로 바뀌면서 전수조사부터 모순된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심은 작물에 대해 무슨 근거로 품목조사를 하겠냔 말이다. 결국 흐지부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이 지난 해 밭농사 지었다는 결과만 가지고 직불금을 지급하라고 전북도의 시행지침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혼란이 생긴 건지 궁금하다.

오은미 의원 : 지난 해 한미FTA 협정이 국회 비준까지 일사천리 진행되면서 대책으로 밭농업직불제가 여·야 합의됐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제도가 도입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다. 문제는 중앙정부의 밭직불제 내용인데…. 전북도가 중앙정부의 문제투성이 제도를 이어 면적기준이던 것을 품목 기준으로 바꾸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저조한 신청률을 보면 알 수 있다. 전북도도 중앙정부도 밭직불제 효과를 높이려면 하루빨리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면서 농민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전북 농민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요약 해 달라.

이효신 정책위원장 : 지난 해 밭농사 분에 한해서는 약속대로 면적 기준으로 직불금을 달라는 것이다. 이미 예산도 세웠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 면적 기준으로 해야 행정도 일처리가 가능하다. 또 중앙정부와 별도로 밭직불금을 시행하는 것이다. 전북도가 현재 중앙정부와 별도로 농가소득 보전 차원에서 쌀직불금을 지원하는 것처럼 하면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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