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약

  • 입력 2012.06.18 09:56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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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한두 군데씩 아픈 곳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무쇠로 만든 기계라도 오십 년을 쓸 수는 없을 테니 사람의 몸이 오히려 쇠보다 더 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집에도 약 상자가 따로 있어서 끼니때마다 각자 약을 챙겨 먹는다. 어머니는 혈압에 심장 약, 아버지는 관절 약, 나는 당뇨와 해를 넘겨 고생하고 있는 오십견 약, 아내 또한 관절에 좋다는 무슨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얼마 전에는 아버지가 개똥쑥을 한 아름 베어왔다. 성인병과 암 예방에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그늘에 말린 그놈을 뜨거운 물에 우려 아침저녁으로 한 잔씩 먹으라고 강권하는데 참으로 마시기가 괴로울 정도로 쓰다. 늙으신 아버지가 나름 가족의 건강을 챙긴다고 정성을 들인 것이니 할 수 없이 코를 막고라도 마시는데, 한 번 맛본 아내는 그것을 마시느니 차라리 병을 앓는 편이 낫겠단다. 그렇게 양약과 사약으로 병을 다스리며 사는 게 결국 나이 들어가며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과수원을 하는 삶 역시 나무의 병을 다스리는 일이 일 년 내내 계속된다. 도대체 개량된 과수들은 병에 너무 취약하다. 올해는 봄부터 때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예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병이 오는 듯하다. 복숭아나무는 너나없이 작목반 전체가 좀벌레로 인해 고사하는 나무가 속출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벌레가 어떻게 단단한 나무를 뚫고 들어가는지, 들어가서는 나무속에 알을 까고 속을 파먹는다. 작은 구멍으로 나무의 진액이 흐르기 시작하면 이파리가 시들부들해지다가 나무 전체가 주저앉아 버리기도 한다. 참으로 무서운 놈인데 방제할 방도도 마땅찮다. 봄가을로 고독성의 살충제를 나무 둥치에 뿌리는 게 일반적인데, 나는 봄에 유황을 고고 남은 찌꺼기를 발라서 약간의 효과는 보는 듯하다.

올해 또 유행하는 병은 이름도 예쁜 새눈무늬 병이다. 주로 복숭아와 포도나무에 생기는 병인데 이파리에 마치 새의 눈처럼 까맣고 동그란 무늬가 생기다가 구멍이 뚫리는 병이다. 구멍이 뚫린다고 해서 천공병이라고도 불린다. 퍼지는 속도가 몹시 빨라서 방제가 늦어지면 이파리 뿐 아니라 과일까지 새눈이 박혀 밭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의 원인은 좀 특이하다. 봄에 아직 잎이 연할 때 바람이 거세면 이 병이 창궐한다. 그러니까 바람이 주된 원인이라는데 올해 봄바람이 거세어 또한 이 병이 심하다. 마이신이라는 약을 써서 방제하는데, 복숭아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혼신을 다해 새눈무늬병을 막아야 한다.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지금 거의 한 달째 비가 오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 소나기가 두어 번 오갔을 뿐 가뭄도 보통 가뭄이 아니다. 과수원에는 관수 시설이 되어 있어서 물을 주기는 하지만 워낙 가물어선지 지하수도 전처럼 많이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날이 가물면 마구 퍼지는 게 진딧물과 응애다. 둘 다 작은 벌레인데 이들 또한 과수에 치명적이다. 진딧물은 일반인들도 흔히 보았겠지만, 그리고 비교적 방제가 쉬운 편이지만 응애란 놈은 무섭다. 검거나 붉은 색을 띤 응애는 눈이 밝은 사람이나 꼬물거리며 기어 다니는 게 보일 정도로 작은 벌레로 나뭇잎의 뒤편에 생긴다. 퍼지는 속도도 아주 빨라서 하룻밤 사이에 증손까지 본다고 한다. 그 말의 진위는 알 길이 없지만 응애가 퍼지기 시작하면 이파리의 즙액을 빨아먹어 초록색이 누르스름한 색깔로 변하다가 결국 떨어지고 만다. 요놈은 꽤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서 농약을 직접 맞지 않으면 결코 죽지 않으며 잎의 뒷면에 서식하고 있어 농약치기 또한 까다롭다. 농약 중에 응애약은 거의 가장 고가에 속한다. 응애가 많이 발생하는 농가는 주로 제초제를 사용하는 과수원이다. 바닥의 풀이 무성하면 응애는 거처를 굳이 과수로 옮기지 않는다. 풀이 전멸하게 되면, 그러니까 응애의 처지로는 살던 터전이 사라지게 되면 할 수 없이 초록의 이파리를 달고 있는 과수로 뛰어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수십 가지 병들과 싸워야 할 올 한 해가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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