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 수탁거래 정부·농협의 쌀값 책임회피 수단

  • 입력 2012.05.21 13:03
  • 기자명 한국농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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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벼 수탁거래 시범사업을 올해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4개 미곡종합처리장(RPC)이 25개 들녘경영체를 대상으로 수탁거래 시범사업을 한 후 앞으로 점차 확대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몇 년 동안 정부가 집요하게 벼 수탁거래 도입을 시도했지만 매번 쌀 농가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시행되지 못했다. 쌀 농가들이 수탁거래를 반대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수탁거래가 시행되면 정부와 농협이 쌀값 안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시중 쌀값 불안정에 따른 피해는 모두 쌀 농가들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이 벼를 매입할 때 농가들과 협의한 결과를 매입가격에 반영해 왔기 때문에 쌀 농가들은 조금이나마 쌀값 불안정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수탁거래가 시행되면 농협은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판매를 대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쌀값에 대해 농가들과 협의할 필요가 없게 된다. 농협은 수탁거래에서 수수료 수입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지 제값 받고 쌀을 파는 것은 부차적인 관심이 된다. 농협이나 양곡유통업체에 비해 시중 거래 동향이나 가격정보가 현저히 부족한 쌀 농가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수탁거래로 쌀값을 시장기능에 맡기고, 쌀값 안정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대폭 줄이겠다는 의도다. 또한 안정적인 쌀 소득을 기대하기 어려운 소규모 쌀 생산농가의 퇴출을 유도하겠다는 속셈도 있다. 쌀값 안정이 농업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하는 정부는 아마도 수탁거래로 쌀값을 불안하게 만들어 쌀 농사를 포함한 농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쌀값 불안에 견디는 생존력은 소규모 쌀농사가 대규모 경영체 보다 더욱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다. 정부의 의도와 달리 수탁거래에 따른 쌀값 불안은 대규모 경영체의 경영 부실과 쌀농사 포기를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다. 수탁거래가 확대되면 쌀의 가격 및 소득 불안은 쌀 생산 감소와 자급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은 분명하다. 세계적 식량위기 상황에서 주식인 쌀에 대해 시장기능 활성화를 촉진하겠다는 것은 퇴행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오히려 안정적인 식량생산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쌀의 가격 및 소득 안정 그리고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미래지향적 정책이다. 수탁거래 확대가 아니라 쌀값과 소득의 안정 그리고 자급률 제고를 위한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하며, 이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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