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솎기

  • 입력 2012.05.21 12:57
  • 기자명 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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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날씨 탓인지 배가 엄청나게 매달렸다. 적당한 간격과 성장이 잘될놈을 두고 열매솎기를 한다. 가위질을 아무리해도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열매가 시원찮은 탓이다. 수정이 원활하지 않았는지 튼실한 놈이 없다. 시원찮은 놈들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니 어디 중심을 두고 가위질을 할지 몰라 쩔쩔 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병까지 와서 병으로 인한 상처가 없는 놈을 두려니 살피는 시간이 많다.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네 시간을 하고 나면 초주검이다.

맛있어야 할 점심은 신역이 고된 관계로 입에 얼른 붙지 않는다. 아내는 대뜸 물에 말아 억지로 먹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이다. 농사는 억지로 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다 할 뿐이다. 그 다음은 토양과 물과 하늘이 한다. 그리곤 장마를 견디고 폭우와 태풍을 견디어 내야만 수확의 기쁨을 맛 볼 수 있다. 그래서 농부들은 곳간에 넣어봐야 수확량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두둑 소나기가 온다. 이럴땐 우박도 함께 오는데 자칫 굵은 우박이 떨어지면 패농이다. 다행스럽게 우레와 굵은 빗방울이 10여분 쏟아지고 그친다.

다시 사다리에 오른다. 과수원 일은 라디오를 듣기가 좋다. 가끔 머리 위를 나는 전투기 소음이 듣기를 방해 하지만 세상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라디오 뉴스에서 한중FTA가 본격협상중이라고 한다.

과수농민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협상이 될 것이다. 중국의 과일 시장은 아직 후진적이긴 하다. 그러나 과일의 다양성과 생산량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준비만 된다면 한반도의 과일시장을 중국이 접수하는건 시간문제다. 산동성의 사과와 배는 이미 우리나라 수준으로 올라서 있다. 우리나라 생산비의 절반도 들이지 않고 사과와 배를 생산한다.

위해(weihai)를 지나 래양(laiyang)으로 들어가면 한 시간이 넘도록 차를 달려도 끝간데없이 과수원만 보인다. 함석헌 선생의 예언대로 곤륜산 마루턱에서 굴러 내리는 바위 같은 그게 현재 중국이다. 이미 우리식탁의 7할이 외국농산물이고 거기에 다시 7할이 중국산이다. 중국이 우리식탁의 절반을 차지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배추수입에서 보듯 국내 농산물 보호정책은 걷어치우고 물가 잡기로 손쉬운 중국을 선택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연이어 있고 뱃길로도 제주와 진배없이 드나드는 중국과의 자유무역은 가락동농수산물 시장 반을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중FTA는 농업부문을 빼고 해야 한다. 미국의 식량작물과 쇠고기, 유럽의 돼지고기와 낙농품에 이은 중국의 신선채소와 어류 및 과일이 밀려들면 우린 안방을 내주고 문전으로 밀려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이렇게 힘든 농사 그렇잖아도 “그만둡시다”를 노래하듯 하지만 그래도 천직이라 붙들고 진통제로 몸을 추스르며 들로 나간다. 이제 정말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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