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텃밭’은 농촌의 활력소

지역공동체가 살아나고, 여성농민이 생산주체가 되고

  • 입력 2012.05.14 13:38
  • 기자명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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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농정 20년, 농업은 몰락하고 있고 농촌 공동체는 붕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 활력이 생기는 곳이 있다. 바로 언니네텃밭이다.

언니네텃밭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식량주권 지키기 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시작됐다. 초국적 농기업의 화학비료, 대형농기계와 석유를 이용하는 관행농업이 아닌 소농 중심의 지속가능한 생태농업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생산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자는 매월 10만원의 회비를 내고 여성농민의 생산을 지원한다.

횡성공동체는 성황 중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을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언니네 텃밭이 시작된 지 3년 째. 강원 횡성공동체 한 곳으로 시작해 전국 14개 공동체로 늘어났다. 이 중 언니네텃밭의 큰언니 격인 강원 횡성공동체는 계속 작게 여러 곳으로 분화하고 있다. 시동공동체, 횡성 오산공동체 그리고 지난 1일에 횡성 도새울공동체가 독립했다. 이로써 횡성에만 공동체가 3곳이다. 생산자 수는 처음 11명에서 두 배 이상 늘었다. 소비자 수는 말할 것도 없다.

▲ 횡성 도새울공동체 생산자들이 둘러 앉아 분주하게 꾸러미를 싸고 있다.
이제 횡성에서 횡성공동체를 모르는 농민이 없다. 배추가격이 폭락하면 제값을 못 받기 일쑤인데, 언니네텃밭은 꾸러미에 넣고 절임배추를 공동판매하면서 제값을 받아 관심이 집중됐다. 횡성여성농민회 이숙자 회장은 “꾸러미가 가격폭락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내 마을에도 공동체가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성 중심의 농업에서 꾸러미 중심의 농업으로 바뀌는 변화도 생겼다. 남편도 처음에는 반대했다가 “이것 심어봐라, 저것 심어봐라”면서 모종도 갖다 주고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다보니 농사도 꾸러미 중심으로 바뀌고 여성 농민이 남편의 보조자에서 이제 생산의 주체가 되고 있다.

이런 언니네텃밭 활력은 자연스럽게 여성농민회 조직 확대 강화로 이어졌다. 횡성 여성농민회 회원도 3년 새 3배로 늘어났다. 더불어 여성농민 활동가도 육성되고 있다.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활동이 높아지고, 그러다 보니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는 활동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숙자 회장은 “언니네텃밭이 여성농민회 식량주권 사업으로써 중심을 잡고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해가 걸리면 욕심도 생기고 불협화음도 생기기 마련인데, 여성농민회 조직사업이다 보니 토종종자 채종포 공동경작도 하면서 협동도 키우고 서로 배워간다는 것이다. 또 민주적인 소통을 원칙으로 삼고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횡성 여농은 한 달에 한 번 월례회의를 진행하는데 반드시 교육도 함께하고 있다. 고령화된 여성농민은 “나는 잘 몰라”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식으로 정리되지 않아도 적정 생산비 보장의 필요성, 전통농업, 토종씨앗 지키기 등을 삶으로 체득해 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공동체가 분화할 때마다 꾸러미를 나눠주는 일에 싫은 내색 한번 없었다고 한다. 당장 꾸러미가 줄어들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는 데도 말이다. 언니네텃밭이 마을 공동체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원칙을 교육하면서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시작한 도새울공동체, 확장 준비 중
지난 1일에 분화한 도새울공동체는 이제 막 꾸러미를 2번 쌌다. 생산자는 7명으로 대부분 횡성공동체에서 1년 넘게 함께 꾸러미를 싸면서 배웠다. 새롭게 시작하다 보니 마음이 맞지 않는 것도 있다. “도시민들은 많이 싸주면 버리니까 조금 싸야 한다”, “그래도 넉넉하게 줘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소비자를 생각하고, 토종종자를 지키고 생태농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데는 한마음이다. 제초제도 농약도 안 뿌리고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귀찮다. 그래도 서울에서 믿고 먹는 건데 독하게 농약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답한다. 꾸러미를 싸는 와중에 “이건 토종 파야”, “이것(산나물)은 자연에서 그대로 자라서 좋은 거다”며 자부했다.

생산자들이 분주하게 꾸러미를 싸는 동안 마을 여성농민은 마실 나오듯 작업장으로 놀러 온다. 그러면 이야기꽃이 한바탕 핀다. 관심 있어서 나오셨냐는 질문에 “아니다”며 내빼시는 여성농민도, “나는 관심 있어”라는 분도 있다. 자연스럽게 꾸러미 싸는 날은 마을 여성농민이 모이는 날이 되고 있다.

이제 도새울공동체는 여성농민의 생태농업을 지지해 주는 소비자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동·송파 환경운동연합과 사계절에 한번 이상의 도농 교류를 하는 등 계획을 구체화하면서 자매결연을 논의하고 있다.

강동·송파 환경운동연합 맹지연 사무국장은 “토종종자 지키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고, 돈이 안 되는 텃밭 농사를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진실하게 짓는 게 귀하다고 생각한다”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뜻을 같이하고 싶다”며 취지를 전했다.

또 “체험학습이 유행처럼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덜 재미있더라도 시골 모습도 보고, 사람 간의 진실 된 만남이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농업과 농민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농업이 대형화되고 투기화되고 ‘위기’라는 말이 매년 반복되는 가운데 언니네텃밭이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경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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