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책의 되돌이 표

  • 입력 2012.01.09 10:32
  • 기자명 오미란 광주여성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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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보면 ‘소’가 문제다. 축산농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2,000마리의 소를 몰고와 항의시위를 한다. 전북에서는 사료값이 없어서 소  9마리를 굶겨 죽였다. 심지어 소를 팔려면 폐기물 비용 1만원을 더 얹어서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다니...

도대체 지금 축산농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미 FTA가 본격화 되면 벌어질 일들이 왜 벌써부터 일어날까?   답은 하나다. 적자 농사이기 때문이다. 사료값은 오르고 고기값은 내리고, 쇠고기 수입은 증가하고 3중고가 이어지니 축산농민들이 살아낼 재간이 없다.

그래서 축산농가는 자신의 피붙이 같은 소를 굶겨죽이고 거리로 내몰고 헐값에 팔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마치 80년대 중반을 다시보고 있는 느낌이다. 80년대 중반 새마을운동본부 전경환(전두환의 동생)이 뉴질랜드산 살아있는 소를 수입하면서 소 값이 똥값이 되자 농민들은 여의도에 소를 풀고 “소 값 개 값”을 외치면서 투쟁을 했다.

이른바 “소몰이 투쟁”이 벌어진지 23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축산 농가들은 “소 값 개 값”이라는 되돌이 표를 붙여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당시 ‘소몰이 투쟁’때 전투경찰들은 마을마다 입구를 봉쇄하면서 농가의 여의도 상경투쟁을 강압적으로 막아섰고 여성농민들은 이에 항의하여 바늘을 가지고 전경들의 나무 옷 사이를 찌르면서 대열을 뚫고 투쟁했었다.

절박한 심정에 최루탄에 맞서 고춧가루를 뿌려가면서 장터로 진격하는 투쟁을 하고 심지어 나주의 모 여성농민은 군청 앞 나무에 여의도에 가지 못한 소를 메어두고 “농가부채 대신 수입소로 가져가라”고 항의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한때 우리나라 대학은 우골탑(牛骨塔)으로 불리웠다. ‘우골탑-상아탑’ 이었던 시절 소는 선배들의 빛나는 인생을 안겨준 소중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청년실업이 만연한 88만원 세대의 신세는 어쩌면 축산농가가 당하는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씁쓸하다.

현재대로라면 자살하거나 파산할 축산 농가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에는 소 잃고 외양간도 잃어야 할 절박한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도대체 정책이란 것이 있기나 하는 것일까?  물가실명제를 운운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사료 값 30%가 올랐고, 육우 값은 30%가 내렸다. 축산농가 입장에서 보면 사료 값은 내리고 육우값은 올라야 수지타산이 맞는다. 물가정책 입장에서 보면 오른 사료 값은 책임지고 떨어진 육우값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소 값 폭락은 “누가 어떻게 책임 질건데?”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다. 한미 FTA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축산 농가는 사라질 것이다. 축산농가 대신 축산기업만이 남을 것이다.  23년 전 가난한 여성농민이 그랬듯이 축산농가들 소 굶기지 말고, 자살하지 말고 농가부채 대신, 사료 값 대신 현물소로 상환하는 투쟁이라도 되돌이표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농민은 생명을 키우고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임진년이 될 수 있도록 더 이상 농민의 존재가치를 훼손시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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