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너는 살았다!

홍경자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 입력 2007.11.26 09:28
  • 기자명 홍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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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 일요일, 아침부터 마당 가득히 콩을 널었다. 도리깨질 하던 손을 멈추고 달아나는 콩이 아까워 한 알 한 알 눈도장을 찍다보니 언젠가 웃음보를 터트리며 읽던 김용택님의 ‘콩 너는 죽었다’라는 시가 생각나 또 빙그레 웃는다.

이 콩을 다 털어 말리면 다시 내 손을 거쳐 구수한 두부가 되고 껍질은 또 비지로 다시 태어나 어느 오붓한 가족들의 저녁 상을 넉넉하게 차려줄 것이다. 또 순간 가슴이 벅차다.

재작년 봄부터 장 날이면 횡성에 재미난 일이 생겼다. 아침부터 아줌마들이 농민회사무실 에 모여 콩을 씻어 분쇄기에 간다, 물을 끓여 콩 죽을 끓여 염들인다, 다 된 순두부를 나누어 먹으며 하하호호 하는 동안 눌러 둔 두부는 저 혼자서 다 되어간다.

횡성여성농업인센터에서 전통전수 사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이름하여 ‘할머니 딸들에게 희망을...’

점점 잊혀져 가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손 맛을 그대로 이어가고, 한 해라도 서둘러 그 분들 살아 계실 때 그 맛과 정성을 우리 여성농민들이 물려받아 되살리자는 마음에 체험 형태로 진행하면서 입 소문이 시장 바닥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니지만 전통의 맛과 과정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찾는 사람의 입 맛에도 맞춰 가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또 규격화해서 공평하게 나눠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센터의 권유로 기술 전수를 받아 강사 역할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나고 우리 농업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주로 오고가면서 아주 사업단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래! 텃밭에서 나는 콩이야말로 우리 여성농민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품목이요, 두부 만드는 기술 또한 우리 여성농민들의 손이 아니면 어디서 그 맛과 정성이 나오겠는가.

시집와서 수십년 씩 지어온 콩 농사지만 반년을 고스란히 농사짓고 거두어 장사꾼에게 팔아버리면 그 뿐, 늘 뭔가 허전하던 그 것을 이제는 우리가 되찾는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일이 착착 진행되면서 사업 방향도 잡혀갔다.

지극한 정성으로 아침 저녁 식구들이 먹을 푸성귀와 잡곡을 가꾸는 어머니의 정성스런 손 끝으로 꾸려지는 텃밭농사 그대로의 마음을 살리자는 의견을 담아 그 이름도 여성농민 영농법인 ‘텃밭두부’.

찬 바람이 슬글거리던 날, 설립 총회에서 추천으로 내가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고 여전히 생산도 담당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고 순환하는 ‘지역 순환형 영농조합’이라고 거창하게 내세우고 공장을 차려 성대하게 개업식을 하던 날, 이 변변찮은 여성농민 대표이사는 인사말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울먹이고 말았다.

그 동안의 마음 졸인 일, 드디어 여성농민의 힘으로 이렇게 해 냈다는 감격 등이 뒤범벅되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저무는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날마다 공장 문을 나서며 또 다시 어깨가 무거워진다. 우리 뜻을 가상히 여긴 생협에 납품이 성사되어 조금씩 생산은 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가 부담스럽다. 어제도 유통담당 이사가 지역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납품을 부탁했더니 물건 놓을 자리가 없어서 안되겠다고 그런데 그 뜻은 좋다고 하더란다. 세상에…첫 술에 배부를까마는, 재벌이나 메이커를 내세우는 기업이 아니라서일까?

미덥지 못한 여성농민들이 운영하는 것이 맘에 차지 않았나? 집으로 오면서 내내 심난했다.

우리를 믿고 기꺼이 몇 푼씩 모아 종자 돈을 모으고 출자금을 마련해준 고마운 분들에 대해 꼭 성공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는 무겁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그득하다.

이 땅에 알아주는 이 없는 여성농민으로 살고 있지만, 비록 이 보잘 것 없는 두부로 인해 기쁘기도 하고 아득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린 이렇게 해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작년보다는 도리깨질이 더 신나는 날이다. 우리 콩, 너는 우리 손으로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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