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있는 농산물, 이유 있는 판매

  • 입력 2011.12.05 17:23
  • 기자명 오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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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 미 란 (광주여성재단 사무총장)

며칠 전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강정마을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귤판매였다.
두말없이 주문을 했다. 사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주문을 한다. 마치 사회적기업이 “빵을 만들기 위해서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서 빵을 만드는 것”처럼.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상인

김장철이다. 시장에 가보니 강원도 고랭지 배추라고 써 있는데 3단에 12,000원이다.  웬지 맘이 심란하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본다. 1단에 4포기니까… 12포기, 1포기에 천원. 이런... 완전 적자다. 돌아가신 정광훈 회장님(전남 해남)의 노래가 생각이 났다. 망한집 배추먹기 X같은 농사...

그런데 서울에서 지인이 양파 두 자루를 사서 보내시라고 전화가 왔다. 무안에 전화를 했다. 양파농사 많이 지었으니 쉽게 살 수 있을거란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본인들 먹을 것 말고는 모두 농협에 수매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고구마만 주문하고 양파는 포기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인가? 양파를 저장하려면 대형 저장고가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그래서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농협수매나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 팔아야 한다.

결국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것은 상인이다. 뭐 여기 미주알 고주알 쓰지 않아도 농산물 유통의 정석이다. 그런데 내 머리가 잠시 상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부는 농민들이 스스로 유통과 출하를 조절할 수 있도록 대형저장고라도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악순환은 이제 전통이 된지 오래다.

배추도 양파도 가격폭락으로 현지 농민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비쌀땐 없어서 못팔고 수확하니 폭락이고. 정말 악순환이다.
귤을 주문하면서 잠깐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모든 생산자들이 농산물에 이름을 달아서 판매하면 어떨까?

“강정마을 투쟁기금 마련 귤”
“00지역 공정거래 배추” “생명을 지키는 쌀”
“FTA 투쟁 기금 마련 고추”

모든 생산자들의 농산물에 이름을 달고 이유있는 판매를 해보면 어떨까? 소농들은 시도할 만한 방법이 아닐까?

신안의 경우 소금을 농협에 수매하는 것보다 도시민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 가격차이가 무려 2.5배~3배 정도라고 한다. 물론 전량을 이렇게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산 소금을 섞지 않으니 소비자도 좋고 가격을 더 받으니 어민도 좋고 이런 경우를 두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하던가? 더구나 소금만이 아니라 소금을 주문하면서 새우젓, 절임배추 등을 곁달아 주문하는 경우도 늘어간다고 했다.

생산자 알리는 이름붙은 농산물

이제 소규모 농산물 생산을 하는 농민들의 유통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농민들끼리 연합하여 협동조직을 만들어 이름있는 이유있는 농산물 판매를 확대하는 조직활동이 필요하다. 언니네 텃밭은 아마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정직한 판매, 이유있는 판매, 이름있는 생산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농산물 유통을 위한 협동조직을 확장하는 것만이 소농이 생존하는 방법일 것이다.

곧 있으면 쌀 수매다. 우리 농민들은 또 얼마나 아스팔트 농사를 지어야 할까? 벌써 생각은 여의도 광장으로 이어진다. 생각만 해도 고단하다. 그 놈의 아스팔트 농사를 언제쯤이면 안지어도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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