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지정(葡萄之情)을 생각한다

고은정(약선식생활연구센터)

  • 입력 2011.09.11 22:34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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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그렇게도 극성스러워 보이던 풀들이 힘을 잃어가고, 따가운 햇살 아래서는 오곡이 익어가고 있다. 건조한 계절이므로 먹고 남는 호박이나 가지를 켜서 말리고, 참깨를 털고 고추를 비롯하여 수확하는 모든 농산물들을 건조시키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 할 수 있겠다.

밤의 기온은 많이 떨어지고 낮엔 한여름보다 더 뜨겁기 때문에 일교차가 커져서 농작물에 이슬이 맺히므로 절기상으로는 백로(白露)가 이즈음에 속해 있다. 대개 이때를 전후로는 가을장마도 물러가고 맑은 날이 계속되므로 이슬을 닮은 포도는 더욱 검어지고 향이 짙어져 제 맛이 나므로 절로 손이 가게 된다하여 선조들은 백로를 일컬어 포도의 절기라 하였다.

포도는 多産의 상징으로 조선의 백자 문양이나 선비들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과일이었으며 농사를 지어서도 첫 수확물은 사당에 먼저 고한 후에 먹었다고 하니 포도를 귀하게 여겼던 조상들의 마음을 짐작할 만하다.

포도는 맛이 달고 시며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다. 근골(筋骨)의 습기로 인해 저리는 증상을 완화시켜주며, 기운을 더해주고 뜻을 강하게 해주며, 살이 찌고 튼튼하게 해주면서 배고픈 것과 풍한을 잘 견디게 해줘서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며 늙지 않고 오래오래 살게 한다. 포도나무의 뿌리도 물로 달여 먹으면 열을 내려주고 부종을 없애주며 임산부의 입덧에도 좋고 멈추지 않는 딸꾹질에도 효과가 있다.

현대의 식품영양학에서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을 만큼 항산화의 효능이나 면역력이 높은 포도는 질병의 예방이나 노화방지, 치매예방에 탁월한 식품으로, 껍질을 먹을 때 느껴지는 시고 떫은맛에 들어있다는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이 임상실험 결과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예방하고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포도의 껍질과 씨, 꼭지에는 더 많은 양의 레스베라트롤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껍질과 씨를 같이 먹는 것이 더 포도를 더 건강하게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효능은 포도로 만든 와인에도 함유되어 있어 하루 한 잔 정도의 와인이 심혈관계통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보다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또 포도는 과일 중에서 피로회복에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흡수되어 에너지로 바뀌는 포도당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포도에 많이 들어있는 단당류이기 때문에 이름도 포도당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포도라고 할지라도 당뇨의 증세가 있는 사람이나 대변이 묽은 사람은 신중을 기해서 먹어야 할 것이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어두워질 수도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포도가 맛있다는 백로인 오늘, 포도를 먹으며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생각한다.  어린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어 껍질과 씨를 가려낸 후 입물림으로 먹여주며 키우는 정을 말함인데, 그래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하면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 하여 지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껍질에 있는 성분까지도 추출해내는 조리도구를 쓰면서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요즘의 부모들이 과거의 어머니들 보다 자녀들의 키를 더 키우고 체력을 조금 더 강하게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먹여주시던 어머니의 정이 부족한 탓인지 최근에 부쩍 어버이 섬김이 부족하다 하여 각성하는 말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 모자람이 모자람이 아니고 풍족함이 풍족함이 아님을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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