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아이들을 지키려는 정당한 집회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

  • 입력 2007.11.19 00:55
  • 기자명 정태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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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인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한미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닙니다. 미국형 FTA는 여느 협정과 달리 상대 국가의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꿔 놓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는 2006년 4월 미국 의회조사국의 보고서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선진제도화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대기업의 이익자신과 아이들을 지키려는 정당한 집회을 쫓아서 만든 미국 제도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고 해서 우리 산업이 발전하고 소비자의 이익이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란 괴물

정부가 선진제도화의 예로 드는 것들만 봐도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한미 FTA를 통해 우리의 저작권은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이 제도가 우리 예술가들을 자극해서 수출용 문화상품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의 저작권 수입 세계 2위입니다. 법 하나 바꿔서 이제 20년동안 인세를 더 많이 지불해야 합니다. 지적재산권 전체를 놓고 본다면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때 가장 많은 손해를 볼 나라가 한국입니다.

약의 특허도 강화했습니다. 파이자(pfizer)등 미국 대기업이 이미 미국 법으로 만들어 놓은 특허-허가 연계, 자료독점권 강화, 특허 지연 보상 등이 모두 도입됐습니다. 정부도 이 때문에 약값이 늘어날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5년간 약 1조원 정도를 얘기하고 있지만 호주의 사례를 보면 5조원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 배기개스 규제도 약화됐고, 유전자 변형 물질의 규제도 미국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도 완전 자유화할 전망입니다.

더구나 한미 FTA에는 투자자-국가 제소권이 포함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표적인 독소조항입니다. 어떤 분야든 미국의 산업이 진출하면 그 분야는 투자자-국가제소의 대상이 됩니다.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란 정부 정책으로 인해 손해를 본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물론 우리 기업도 이런 소송을 할 수 있습니다. 행정소송이 되겠지요.

그러나 한국의 법원이 판결을 하면 미국 투자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해서 한미 FTA는 제3의 민간기구에서 판결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기구에 판사들이 속해 있고 판례가 쌓이는 게 아닙니다. 이들 기구는 다만 절차 등 규칙만 제공합니다.

실제로는 세명의 변호사가 판결을 합니다. 예를 들어 AIG가 한명의 변호사를 선임합니다. 한국 건강보험공단도 한명을 선임합니다. 그리도 양 측의 합의로 또 한명의 변호사를 선임합니다. 이 세명이 재판부(중재부)가 되는 겁니다.

이 재판부는 오직 한국 정부의 정책이 한미 FTA의 몇가지 원칙(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최소기준대우 등)을 어겼는지, 아닌지만 판단합니다. 그 정책이 왜 나왔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 명의 변호사는 모두 미국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는 경우 엄청난 보상비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세계 최고의 변호사들을 선임해야 합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원칙은 최소기준 대우입니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국제적 관례에 비춰 심하다고 하면 패소하는 겁니다.

위 사례에 대해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물론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우리와 같은 건강보험제도가 없습니다. 미국의 보험회사들이 망할 것을 뻔하게 알면서도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 우리의 정책이 어떤 판결을 받을까요?

정당한 한미 FTA 반대 집회

한국 정부는 기습적으로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알렸습니다. 공청회도 하루 전에 형식적으로 개최했다고 농민 등의 시위로 무산됐습니다.

협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협상 내용도 제대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4월2일 타결이 된 뒤에도 협정문 초안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철저하게 봉쇄된 겁니다.

한미 FTA 반대 집회는 이러한 알 권리를 요구한 것입니다. 자신과 아이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는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집회는 지극히 정당합니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일부 폭력 상황이 발생됐다고 하지만, 한미 FTA가 빚어낼 참상에 비춰 보면 인간으로서 극도의 자제력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지난 11월7일, 한미FTA 저지투쟁과정에서 구속된 오종렬, 정광훈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의 재판에 변호인측 증인으로 출석한 정태인 교수의 증언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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