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에서도 가격지지정책은 가능하다

  • 입력 2011.08.17 17:51
  • 기자명 장경호 녀름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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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가관리 차원에서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농산물가격 억제에 나서고 있어 농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쌀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부 양곡을 대량 방출한 것이나 최근 한바탕 홍역을 겪은 우유사태도 정부의 농산물가격 억제가 배후에 있다.

이러한 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농산물을 물가관리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소비자인 국민과 생산자인 농민을 대립시켜 상호간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산물값 널뛰기 누구도 바라지 않아

우리 국민들은 농산물의 가격폭등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농민들을 파탄으로 내모는 가격폭락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농산물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농민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생산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가격이 안정되기를 가장 바란다.

결국 농민의 생산비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그리고 국민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농산물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해법이다. 그런데 농산물가격을 시장기능에만 맡겨 둔다면 이런 해법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농산물대란과 가격폭등 및 폭락사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국민과 농민이 모두 바라는 농산물가격의 해법을 찾는 것이 바로 정부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며, 그 핵심은 농산물의 가격안정을 위한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수립하고 제도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부정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어 왔던 것이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협정문이다. 마치 WTO가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금지하는 것처럼, 혹은 보조금 총액규모의 제한 때문에 가격정책의 실효성이 별로 없는 것처럼 알려져 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주장은 틀렸다. 현행 WTO체제하에서도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보조금의 총액규모 역시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시행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다.

WTO에서도 적극적인 가격정책 가능

농림수산식품부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가 활용할 수 있는 감축대상보조금(AMS) 규모는 약 1조4천9백억원에 이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2004년과 같은 추곡수매(가격지지정책)를 시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현행 고정 직접지불금은 허용보조금이기 때문에 수매제도(가격지지정책)와 병행실시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WTO가 허용하고 있는 최소허용보조금(de-minimis)도 있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 총생산액 약 40조원의 10%에 해당하는 약 4조원 규모로서 품목 특정 혹은 품목 불특정 방식으로 적극적인 가격정책에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약 5조4천9백억원 정도가 적극적인 가격정책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보조금의 한도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고정 직접지불금과 같은 다양한 허용보조금 제도를 결합하여 가격정책과 소득정책을 병행할 수도 있다.

게다가 현재 우리 정부가 가격정책과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예산 및 기금의 규모는 양곡관리특별회계, 농산물가격안정기금, 변동직불금 등 약 3조4천억원이 있다. WTO에서 인정하는 보조금 총액수준과 우리 정부가 실제 운용하는 재원규모를 볼 때 적극적인 가격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남은 문제는 보조금의 허용한도 내에서 정부가 운용하고 있는 각종 재원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다. 이 부분은 현행 정부의 가격 관련 정책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하여 적극적인 가격정책과 제도장치로 새롭게 개편하는 문제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농민이 모두 바라는 최선의 해법을 실현하기 위한 가격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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