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를 위하여

  • 입력 2011.07.25 08:32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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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쉴 참에 옥수수를 꺾는다. 첫물이라 잘 여문 것이 별로 없다. 스무 통 남짓 따서 겉껍질을 대충 벗기고 속껍질 두어 겹은 그대로 남긴 채 비닐봉지에 담는다. 캐놓은 감자며 마늘, 대파, 풋고추까지 사과박스에 꽉 들어차게 채운다. 불볕이라 그깟 일에도 땀이 쏟아진다. 그래도 일 년에 몇 차례 동생네에게 부쳐주는 농산물을 챙기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내게는 일곱 살 터울의 아우가 있다. 그 사이에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일찍 세상을 떴다.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퍽이나 귀여워했다. 어머니가 동생을 낳을 때 혼절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우는 나를 아주 많이 따랐다. 나 역시 어린 동생을 데리고 산과 냇가로 뛰어다니며 놀았고 언젠가 장마가 지나간 남한강가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아 마을잔치를 한 적도 있다. 나이 많은 형을 가진 여느 아우가 그렇듯이 동생도 나를 의지하고 때로는 대단한 형으로 오해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고등학교를 멀리 떨어진 대처로 가면서 겨우 초등학생이던 아우와 헤어지게 되었다. 자취를 하던 나는 두어 주일에 한번 먹을거리를 가지러 집에 왔는데, 토요일이면 버스가 서는 곳까지 나와서 아우는 나를 기다렸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언제 어느 버스를 타고 온다는 기별도 없는데 어린 동생은 해가 기울도록 형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버스에서 내리면 펄쩍펄쩍 뛰며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나 역시 꽤 큰 동생을 무동 태우고 집까지 오곤 했다. 집에 들렀다가 갈 때면 타낸 용돈을 쪼개 고사리 같은 아우 손에 조금씩 쥐어주었다. 헤어질 때마다 동생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고등학교 이후 내내 집을 떠나 있으면서 나는 늘, 아우가 보고 싶었다.

내가 귀농하고 난 후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아우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스물네 살 때였. 늘 어린애같이 생각하던 아우가 여자를 데려와 결혼을 시켜달라고 해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데리고 온 여자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아직 이르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몇 달 만에 결혼식을 치렀다.

아우보다 한 살이 많고, 당시에 직장에 다니던 계수님을 나는 지금도 아주 좋아하고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조차 품고 있다. 그토록 진중하고 지혜롭게 모든 일을 해나가는 여성을 나는 지금껏 계수님 외에 본 적이 없다. 학생이던 남편을 뒷바라지하여 졸업시키고 조카를 낳고 살뜰하게 살림해나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게다가 별 볼일 없는 나를 세상에 하나뿐인 시아주버니라고 깎듯이 챙기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가끔 동생네가 내려오면 술도 한 잔씩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에 지아비 노릇을 착실히 해내는 아우가 든든하다. 계수님은 정치적으로도 아주 깨어있는 분이라 가족 중에 나랑 코드가 제일 잘 맞는다. 아내와도 동서 아닌 자매지간처럼 잘 지낸다. 나는 내가 받은 제일 큰 복이 계수님과 가족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큰 딸이 태어났을 때는 하도 예뻐해서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노상 애만 안고 물고 빠느라 공부마저 팽개칠 정도였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을 아직도 아기인 양 장난이 자심하고 아비가 주지 않는 용돈을 곰비임비 챙겨 큰 딸은 늘 지갑이 두둑하다.

돈 안 되는 농사와 소설에 매달려 사는 형을 아우는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고 크나큰 도움을 준다. 큰 빚 지지 않고 사는 것도 아우의 공이 태반이다. 어린 시절에 내가 주었던, 몇 푼의 용돈을 아우는 수천수만 배로 내게 갚는다. 부끄럽고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결코 고흐가 아니건만 아우는 테오가 분명하다.

푸성귀며 과일 등속을 보내주면 어김없이 계수님이 전화를 한다. 마트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맛나다고, 세 식구가 오순도순 둘러앉아 옥수수를 쪄먹고 있는 중이라고 전해오면 나 역시 마음이 그득 행복해진다. 그리고 비록 서울과 시골에 떨어져 살지만 나는 아우와 계수님과 조카가 사는 집안을 환하게 떠올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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