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야기

  • 입력 2011.07.18 12:02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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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서른이 넘도록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멀리 외국에서도 여러 해를 보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문득,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의 고향마을은 충주댐에 수몰되었지만 월악산이 의연하게 서 있는 충주로 가고 싶었다. 내 가슴속에 고향이 영원한 영상으로 남아있듯이 내 아이에게도 고향의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도시의 삶을 접고 충주 인근의 시골에 터를 잡았다.

열일곱에 떠난 충주로 서른한 살이 되어 돌아와 다시 십육 년이 흘렀다. 살다보니 점점 더 정이 들어 이제 다른 곳에선 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충주라는 도시는 좀 심심한 도시다. 70년대에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될 적에 애초의 계획은 충주를 통하는 것이었는데, 충주의 유생들이 몇날며칠을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여 충주를 멀리 돌아나가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고도 한다. 그만큼 변화보다는 그대로 있기를 원하는 고인 물 같은 정서가 강한 도시다. 서울의 상수원이라 변변한 산업시설도 없고 특별히 내세우는 것이라곤 맛좋은 사과 정도다.

하지만 내게 충주는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우선 도시의 크기가 작아 마음에 든다. 걸어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갈 수 있고 자전거로는 천천히 달려도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인구의 유출입이 적어서 오래 눌러 산 토박이들이 많다. 시내 한 바퀴를 걷노라면 반드시 아는 사람 몇 명쯤은 만나게 된다. 아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보면 귀동냥만으로도 시내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사건사고쯤은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 도시 안에서는 익명성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 가끔은 그게 불편할 때도 있지만, 이웃의 살림살이까지 다 알고 지내던 공동체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은 규모의 도시가 아주 푸근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인구 이십만이 넘어가면 이내 사라지고 말 그런 푸근함이다.

소설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면 나는 충주에서 청풍으로 이어지는 호반 길을 달리곤 한다. 이제는 옛 모습을 많이 잃긴 했어도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찬한 길이다.

봄이면 찬란하도록 희게 부서지는 벚꽃의 터널을 지나고 늦가을이면 진경산수가 병풍처럼 따라오는 길, 그 정겨운 구비 길을 시속 30킬로 정도로 느릿느릿 돌아서 찾는 곳은 늘 월악산 송계계곡의 한 민박집이다. 민박집 집주인은 말없이 너그럽고 하루 한번 직접 콩을 타 만드는 두부의 고소한 냄새가 감돈다. 집 앞은 송계 계곡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 펼쳐져 있다. 방금 누른 두부 한 접시를 들고 나가 너럭바위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문득, 세상사가 바람 속의 티끌 같다. 무엇을 바라고 이 몽매의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인지.

하룻밤을 자는 동안 밤새 물은 지저귀며 내 안으로 스며들고 흥건해진 나는 또 한 계절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나는 번잡한 곳을 싫어한다. 간혹 서울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도 그 엄청난 사람과 건물에 짓눌려 불에 덴 것처럼 서둘러 내려오고 만다. 그렇다고 호젓한 곳에 틀어박혀 살지도 못한다. 사람이 그리운 탓이다. 그런 나에게 충주는 고향일뿐더러 최적의 조건을 가진 도시이다.

아직은 개발의 손길을 많이 타지 않아 사람을 위압하는 고층빌딩 따위가 없고, 줄기줄기 흐르는 크고 작은 물들도 여름 날 천렵을 즐기기에 맞춤하다. 무엇보다 충주는 내 소설쓰기의 원천이고 내 말의 뿌리가 있는 곳이다. 떠났다가 다시 찾은 이곳에서 나는 내 생애의 끝 날을 보고 싶다. 월악산 영봉에 떠올라 충주호 물로 잠기는, 내 어린 시절을 모두 보아버린 달빛이 있는 한 나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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