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처럼 푸르고 야무지게 사는 ‘행복한 이장’입니다
“아이들이 농촌에 살겠다고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구례군 용방죽정참매실작목반

  • 입력 2011.06.13 13:30
  • 기자명 유정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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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도 그곳에 머물면 지혜로워 진다는 지리산 자락을 넘어드니, 초록일색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품 넓게 둘러진 산자락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살이를 들어보기 위해 구례군 용방죽정참매실작목반 정영이 총무를 찾았다.

전여농 광주전남연합 정치위원장으로, 매실작목반 총무로, 죽정마을 이장으로 몇 사람 몫을 해내는 그의 첫인상은 야무지게 익은 매실처럼 단단했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이장님 찾는 전화가 계속 울린다. 통화 내용인즉, 논에 넣어놓을 우렁이가 더 왔으니 이장님이 분배 해달라는 것. ‘나중에 정이장님이 어떤 솔로몬의 판결을 내려주실까?’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던가, 마침 죽정마을에서 사용하게 될 매실 선별기·운반기 시연회도 있어 더 분주하다.

6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죽정마을은 감이나 밤, 벼농사도 짓지만 열에 아홉은 매실농사라 한다. 전국에서 마을단위로 볼 때 매실 식재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로, 이 매실마을에서 수확되는 매실이 구례군 전체 수확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리산 노고단을 마주하고 있는 마을 뒷산에 35ha규모로 매실나무가 심어져 있고 6월 중순경 출하를 앞두고 있다. 그것도 제초제 한 번 뿌리지 않고 거두게 될 ‘친환경’매실.

▲ 정영이 구례군용방죽정참매실작목반 총무가 매실작목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죽정마을에 살며 매실농사를 짓는 구례매실영농조합법인 최상옥 대표는 “죽정마을에 친환경농법을 도입한지 7년이 됐다. 예전에는 항공방제도 했지만, 이제는 마을에 제초제를 사가지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매실작목반 회원이기도 한 그는 “우리 농사짓는 사람들이 소비자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덧붙여 강조한다.

매실작목반 정영이 총무도 “농사를 잘 짓는 농가도 있지만, 어려운 조건에서도 친환경이라는 약속을 지켜내며 동참하고 있는 농가들의 어려움도 있다”며 말을 꺼낸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제초작업을 못해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내내 듣고 계시던 한 어르신은 “친환경이 아니라면 예초기 돌리고 제초제 뿌리면 한 달은 신경 안 써도 되는데 고달프기도 하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신다.

여느 농사처럼 매실 농사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매실도 다른 과일처럼 가격 등락폭이 큰 편이고, 판로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한 마을에 살며 같은 매실농사를 지어도 여러 입장들이 있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매실이라도 약 쳐서 상품성 있게 키운 매실하고 같은 조건으로 수매가를 정한다.”, “품종별로 구분해서 수확해야 값을 더 받는 걸 알면서도 어려움이 있다”, “우리 마을은 주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직거래로 매실을 팔고 있는데, 판로가 없는 사람은 문제다. 홍보도 필요하다.”, “농가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품종별로 섞이지 않게 수확하면, 수매가를 잘 받을 수 있다.”

이에 정 총무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친환경 매실마을로 이렇게 유지가 될 수 있는 건, 더디 가더라도 한 농가도 소외됨 없이 가려는 숨은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출하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작년에는 한 농가도 소외됨 없이 팔당생협과 출하계약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올해부터는 자체적인 노력으로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마을에서 6월 11일부터 19일 동안 직거래장터도 열 계획이다.

농업문제를 고민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여성농민회 간부에서, 이장으로 두 해를 보내며 “현장 속에서 농업현실을 더 알아가게 된다. 다양한 입장 차이를 조정해가는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다”고 그는 고백한다.

입장의 차이라는 숙제도 농업문제를 고민하는 연장선에서  내가 풀어야할 것이 아니겠냐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어르신들은 문제의식을 갖기보다 순응하시는 편”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매실 밭을 둘러보는데 매실나무 아래 꽃들이 피어있다. 녹비식물로 심어놓은 ‘헤어리베치’다. 익어가는 매실아래 자라고 있는 그것들을 보며 내가 살기위해 남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는 어진 농심을 본다.
정 총무는 “미래 아이들이 농촌에 살겠다고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미소를 짓는다.

‘농촌에서 사는 게 행복한 사회’라는 희망이 매실처럼 야무지고 단단하게 익어가고 있다. 한 시인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했던가. 그의 발자국이 닿는 경계마다 매실꽃이 활짝 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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