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동해 비상… 농민도 말라죽을 지경”

새싹 없는 앙상한 나무 천지…가까스로 싹 올려도 상품가치 ‘제로’
주산지별 포도농사 포기 속출…늑장조사에 농민들 울분

  • 입력 2011.05.30 13:27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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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산에서 올해로 30년째 포도농사를 짓는 석장호 씨가 동해피해를 입은 앙상한 나무를 살펴보며 시름에 겨워하고 있다.

이상기후에 대한 농산물 피해가 매년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포도나무에 동해가 발생해 농민들이 절망하고 있다.

이번 포도나무 동해 피해는 경북 경산, 영천을 비롯해 상주, 김천 등지는 물론 경남과 충청, 경기권 등 전국 포도주산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동해 피해를 입은 포도나무는 흔히 머루포도라고 부르는 ‘머스켓베리에이(MBA)’에서 주로 나타났다.

농민들에 따르면 MBA는 고온에는 강한데 저온에는 약한 특징이 있다는 것. 또 포도에 대한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었어도 나무가 고사하는 ‘특약’에 들지 않아 대부분이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이에 농민들은 지자체와 정부에서 향후 3년 이상 정상적인 소득이 마련되지 않는 것을 감안해 피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상가상 주당 500원 가량하던 포도나무 묘목이 6배까지 폭등하고 이마저도 수요가 달려 구할 수 없어 농민들은 막막한 상황이다.

▲ 경산시의 한 과수원 내에서 정상생육을 하는 포도와 동해피해를 입은 포도(사진 오른쪽). 피해를 입은 나무는 잎이 하나도 나지 않거나 가까스로 작은 싹을 밀어올리고 있어, 수확기에 이르러도 상품가치는 '제로'라고 농민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경남·북 포도 주산지 피해 확산
25일 경북 경산시 남천면에서 확인한 포도농장도 피해 상황이 심각했다.
과수원 주인은 올해로 30년째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석장호 씨(49세)로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와서 올해는 대풍을 기대했는데 포도나무가 이 지경이 될 줄 몰랐다”고 첫마디부터 울분을 토했다. 그는 특히 한우도 30여 마리 키우고 있어 지난 겨울을 노심초사 보내고 봄을 맞아 허탈감이 극에 달했다.

석 씨는 MBA 품종만 총 4천평 짓고 있는데 350여 평 포도밭에서 안쪽에 있는 240여 주의 포도나무가 앙상한 모습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피해를 입지 않은 나무에서 손바닥만한 잎들이 쭉쭉 뻗어 나와 있는 것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상황.

최근 피해조사차 면사무소 관계자가 농장을 방문했다고 전하는 석 씨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 국회의원도 다녀갔는데… 농민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된 적이 없어서 불안하다. 과수 피해는 수년간 소득감소로 이어져 시급히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산과 40여분 거리에 있는 영천시 ‘원제포도작목회’도 동해 피해에 망연자실해 있다.

▲ 경북 영천시의 '원제포도작목회'도 동해피해에 망연자실. 이 작목회 배인호 총무(앞)와 김영상 씨가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작목회 배인호 총무(50세)는 “이런 동해피해는 처음”이라며 “포도수확 기반을 회복하려면 3년은 기다려야 하고 정상적인 수확은 5년을 봐야 한다. 그동안 뭘 해서 살아야 할지 농민들이 한숨만 내쉰다”고 농민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같은 작목회 김영상 씨(45세)는 지난 2000년도에 귀농 하면서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그는 작년까지 포도재해보험을 가입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가입하지 않아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
김 씨는 “이상기후 문제가 매년 농업문제로 부상하고 있는데 포도주산지의 농업기술센터 같은 곳에서 미리 예견하고 농민들에게 대응을 당부하는 시스템이 아쉽다”면서 “재해보험도 생산비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1년마다 새로 가입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경북 상주시 모동면 황재웅 씨의 경우도 재배하는 포도나무의 50% 가량이 고사한 상태. 그는 “나무가 말라죽는 경우는 농작물재해보험 상의 특약을 들어야 한다”면서 “대부분이 특약가입까지는 못해 이번 피해가 더욱 우려된다”고 말했다. 상주지역 중 모동면에서 포도 농작물재해보험을 가장 많이 들었으나 특약을 든 농민은 11명 뿐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는 또 이상기후에 대한 대책으로 과수원 주변에 바람막이 시설 지원을 주문했다.
“바람만 막아줘도 동해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 일 수 있다”는 그는 “주변 농장들 중에 들판에 있는 것은 직격탄을 맞았다”며 “정부에서 재해보상법에 따라 포도나무 동해 피해를 조사하고 있지만 보상규모가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재해보상법 자체의 개선을 강조했다.

▲ 상주시 모동면 황재웅 씨는 "농작물재해보험을 들었어도 나무가 고사하는 것은 특약을 들어야 한다"며 "대부분의 농민들이 특약을 들지 않아 피해를 고스란히 떠맡게 됐다"고 상황을 전했다.

 한편 경남지역에서 유일하게 대규모 포도농사를 짓는 거창군 웅양면도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농가의 대부분이 포도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 농민들은 조속한 피해조사와 대책수립을 거창군에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농식품부의 별다른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현장조사 및 대책수립 등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농민들이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영농철이 되고, 기온이 올라가면서 새순이 늦게 움터오면서 포도나무가 ‘살아는 있는 것’으로 결론내리는 조사결과를 내비치자 농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이미 지금쯤 4~50센티미터 이상 잎줄기가 뻗어나가야만 정상적인 열매가 열려 예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제 꽃눈, 새순이 나오는 것은 상품성 없는 포도가 열린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거창군에서 경남도로 동향보고를 하고 경남도에서 다시 지시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기간동안 농민들은 꼼짝없이 올해 포도농사를 포기해야만 한다.
거창군농민회는 지난 23일 농업기술센터 담당자와의 면담하고, 26일 거창군수와 면담을 하는 등 대책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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