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훈 전농 고문 13일 영면

각계각층 애도의 물결…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치

  • 입력 2011.05.23 12:37
  • 기자명 원재정.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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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고 정광훈 의장의 민주사회장 영결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살겠다고 굳은 의지를 표하고 있다.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이 13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73세.

정 고문은 지난달 26일 4.27 재보궐선거 민노당 전남 화순군수 유세 방문을 마치고 일행들과 1톤 화물차로 귀가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조선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아 왔으나 13일 오후 8시 51분경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정광훈 고문은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농민운동을 벌이며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 2007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전선운동을 이끌어 왔다.

이에 고 정광훈 의장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진행되기도 했다. 16일 저녁 광주 조선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추모제는 1천여명의 농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김덕종 전농 감사, 본지에 만평을 그리고 있는 박홍규 화백, 신택주 현 경북도연맹 의장 등이 참석해 정 의장의 살아생전 모습을 회고했으며, 한도숙 시인, 김봉균 시인 등이 참석해 그를 위해 조시를 바쳤다. 또한 여성농민들로 구성된 노래패 청보리 사랑은 그를 기리는 노래로 고 정광훈 의장에 대한 마음을 표했다.

그를 애도하기 위한 조문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이튿날 17일 새벽 5시경 발인을 시작으로, 그의 고향인 해남군청에서의 노제, 금남로에서의 추모제, 광주망월동묘역까지, 평소에 그를 따랐던 사람들은 자리를 함께하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원재정, 최병근 기자〉

 



<故 정광훈 의장 약력>
 
 

 
1939년 9월 13일 해남군 옥천면 송운리 출생
1966년 12월 최해옥 여사와 결혼
1970년 해남 YMCA 신협 설립 발기인/해남읍 교회 신협 설립 발기인/해남읍교회 중고등부 교사
1972년 해남 YMCA 농어촌 위원장
1977년 故 김남주, 황석영등과 농민운동 조직화에 나섬
1978년 전남기독교 농민회 총무
1980년 5.18당시 전남기독교농민회 총무로 무안, 해남, 영암, 강진 시위주도
1984년 민중교육연구소 교육부장, 미국농산물 수입 저지 미국대사관 점거 투쟁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부의장/전국수세대책위 교육 선전활동
1992년 농민대회 주도 수배 중 구속, 4년간 수감생활(1996년 만기 출소)
1998년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
1999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2001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의장
2003년 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WTO 칸쿤회의 반대 한국투쟁단 대표
2007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2007년 한미FTA저지 투쟁관련 3차 투옥
2011년 민주노동당 고문/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전농 20년사 편찬위원회 위원장
2011년 4월 26일 4.27 화순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 후 해남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
2011년 5월 13일 오후 8시 51분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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