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 입력 2011.05.23 08:35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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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피는가 했는데 어느새 지고 말았다. 맘씨 좋은 부잣집 며느리 치마폭 같은 너울거리는 이파리들을 어느새 떨어뜨리고 말았다. 인간의 삶도 비슷해서 어제 청춘인데 오늘 백발이라 한탄하지 않는가. 꽃이 피고 지는 것도 인연이요, 사람이 살고 죽는 것도 인연으로 더할 것도 피할 것도 아닌 그야말로 인위적 영역은 아닌 것인가 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들어 가며 산다. 끝내는 모든 인연이 끝나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인연으로 인해 울고 웃고 화내고 싸우고 지지며 볶아대며 살아간다. 인연은 부부의 인연에서부터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인연까지 수도 없이 다양하다.

인연으로 인해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이 있고 승려시인 한용운님의 ‘인연설’이 있으며 서정주의 많은 시편들이 불가(佛家)의 인연설을 중심으로 그려지고 있다. 해마다 공연되는 연극 ‘오이디푸스왕’은 악연으로 인해 자멸해 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인연들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절망을 또는 희망을 주기도 하기에 수많은 문학작품 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바로 자신과 연을 맺고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지 않은가. 빗방울 두 개가 가지 꼭대기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 인연이라면 너무 서정적인가. 

불교에서는 사람들의 인연을 인연설과 연기론으로 설명하는데 간단히 말해 사람과의 인연 뿐 아니라 모든 일에도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고 하며 현재의 일어나는 일은 전생에 원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인연을 만들어 가지만 한 가지 인연이 만들어 지는 시간은 잠자리 한 마리의 날개가 바위를 스쳐 그 바위가 가루가 될 때 하나의 인연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연은 우연히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수억 분의 일 확률로 자신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생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여 이생에 태어났는지, 그리고 그 귀중한 인연들을 함부로 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이켜 봐야 할 것 같다.

정광훈 전 의장님께서 타계하셨다. 생전에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시며 인연을 쌓아듯이 장례를 치루는 과정에 여실히 그의 삶이 드러나는 듯 했다. 모순덩어리인 이 땅에서 그것도 해남 땅에서 태어난 것은 농민운동, 민중운동이라는 인연을 만들어내는데 충분한 자양이 되었을 것이고 하필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 것이다.

더욱 5.18을 몇일 앞두고 돌아가신 것도 꼭 스스로 그리한 것처럼 되었으니 그도 인연인 것이다. 묻힌 것도 그와 함께 해남 땅 농민운동을 일구던 시인 김남주 선생 곁에 묻혔으니 그만한 인연이 또 있으랴. 이제 모든 지상의 인연을 내려두고 부디 영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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