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회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쌀농사 짓는 농민으로, 농민회 현직간부로 20년 세월
평택지역 농민약국 개국통해 새로운 자극

  • 입력 2011.05.23 08:3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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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가 한참인 들녘에서 평택농민회 임흥락 사무국장을 만났다. 농번기의 분주함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오전 모내기를 끝내고 이앙기 시동을 잠시 꺼둔 점심시간에 ‘들밥’을 함께 먹으며 사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마친 점심식사의 짬을 아껴 농민운동 얘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논주인과 어르신들이 논 건너편에서 우리의 얘기가 끝날 때를 기다리고 계실 정도로 농민들에게 5월의 한나절은 말 그대로 ‘농번기’였다.

논 농사 2만7천평, 노각오이 1천평을 짓고 있는 임 사무국장은 내년이면 이곳에 내려온 지 20년을 맞는다.

“기타와 운동화, 라디오, 돈 30만원만 들고 ’92년 3월에 이곳으로 내려왔다.”

낭만스럽게 들리기까지 하는 귀농풍경이지만 그는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의 긴 세월동안 농민운동의 끈을 단 한 번도 놓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 전농 경기도연맹 정책위원장, 사무처장, 안중읍지회 총무, 평택농민회 사무국장, 그의 농민운동 경력은 평택에서 보낸 세월과 동갑이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이고, 대학시절도 서울에서 보낸 그가 경기 평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농촌봉사활동’이었다.

 

▲ 모내기 작업중 잠시 짬을 내 살아온 얘기를 하는 임흥락 사무국장

 

“농활을 왔는데 마음이 편했다. 내 체질과 딱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고. 특히 당시는 농민 1천만 시대라 진보적인 활동의 중심이 농민들이었다. 잘못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농민운동이 주춧돌이 될 거라는 생각에 대학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했다.”

그러나 농활로 참가하던 농촌과 농민으로 살아야 하는 농촌은 사뭇 달랐다.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없고…. 농사일이라도 바쁘면 고단해서 고즈넉함을 느낄 새도 없을 텐데 초창기에는 일도 많지 않아 그야말로 ‘방황’하고 어려웠었노라고 그는 고백했다.

그런 그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은 농민회 활동과 고된 농사였다. 그는 주인들이 농사를 못 짓는다고 버려두다시피 한 땅을 얻어 일 욕심을 냈다.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는 기반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혼할 때도 예물과 예단에 쓸 돈과 축의금을 알뜰히 모아 1천5백평 땅을 샀다.

신혼부부의 반지와 목걸이가 될 돈들은 땅이 된 것이다. 그 후에도 후계자 자금으로 1천평 등 차곡차곡 모아 지금은 ‘내 땅’이 5천평이다.

소작 논까지 2만7천평 벼농사는 오로지 혼자서 짓지만 산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거나 물이 닿지 않는 그의 논들은 농사짓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농민운동과 생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에서는 꼭 필요한 이웃이자 일꾼으로, 또 이곳에서 제 2의 삶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농민회 현직 간부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천만 농민시대에 농촌에 내려온 그가 3백만 농민시대를 살면서 고민도 많다.

앞으로 농민운동이 어떻게 될까? 사안이 생기면 서울로 올라가서 ‘데모’를 하는데 그게 답인가?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는 그는 최근 새로운 기운을 충전하고 있다. 는 6월 11일에 평택에 농민약국이 문을 여는데, 대학생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젊은 약사들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는 것.

“농업이 축소되는데 도시에서 살기에도 충분한 약사들이 농촌에서 내려와 마을활동을 하면서 농업문제 해결에 인생을 건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다. 나도 잘살아야겠다고….” 때문에 그는 다시 농민운동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노라고 고백아닌 고백을 했다.

현재 쌀농사를 비롯해 노각오이와 가지생산지의 특성을 살려 작목반 활동도 하고 있는 그는 “농산물 시세에 일희일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가입한지 10년이 된 작목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서 “오로지 농민회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아서 다른 곳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참 단순하게 살았다”고 웃음으로 그간의 시절을 덧붙였다.

최근 쌀값이 비싸다고 정부비축미를 방출하는 정부에 대해 벼 생산 농민다운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쌀값이 떨어질 땐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정부가 쌀값이 회복돼 조금 오르니 떨어뜨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2014년 쌀을 수입하겠다는 계획에 우리쌀과 수입쌀의 가격을 맞추느라 재고미를 쏟아내면서라도 가격을 떨어뜨리는 게 그 중 한 요인일 거고,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거라고 농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쌀이 부족해 쌀값이 오르는데 논에 벼 말고 다른 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주는 긴 안목이 없는 나라에 살면서도, 농민들은 올해 농사도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땡볕 아래 모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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