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托卵)

  • 입력 2011.05.11 10:32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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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에 꽃이 피기 무섭게 꽃이 진다. 동시에 하얗던 과수원이 연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몸은 고되고 농산물 값은 바닥을 모르는 듯 곤두박질이다. 고된 몸을 누이면 너무 고된 나머지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그럴 때 마다 소쩍새가 울어댄다. 소쩍새가 울면 풍년이 든다는데 그것도 걱정이다. 풍년이 들면 곤두박질치는 농산물을 어찌할 수 없기에 더욱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소쩍새는 여름 철새이다. 지금쯤 짝짓기를 하여 4개의 알을 낳아 기르다가 겨울이면 중국남부에서 수마트라까지 날아가 월동한다. 소쩍새는 접동새라고도 한다. 아예 북쪽에서는 접동새라고 부른단다. 흔히 두견새와 소쩍새를 혼동하는데 두견새는 자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뻐꾸기과의 새이다. 물론 소쩍새는 부엉이과로 야행성이다.

흔히 소쩍새는 철쭉꽃에 비유하고 두견새는 진달래에 비교하기도 한다. 소쩍새는 슬픈 전설을 가진 새이며 밤이면 슬프게도 ‘솟쩍다’를 연발하며 운다. 두견새는 낮에 숲속에서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며 운단다.

탁란은 다른 새의 둥지에 한 두 개의 알을 낳아 그새가 알을 깨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뻐꾸기과의 새들이 그렇게 하는데 대표적으로 뻐꾸기와 두견새가 탁란을 하는 새이다. 뻐꾸기는 붉은머리오목눈이라는 새에게 탁란을 하며 두견새는 휘파람새에게 한다.

탁란은 위탁한 알이 이삼일 먼저 부화하도록 되어 부화된 새끼가 아직 부화되지 않은 대리모의 알을 밀어내 떨어트려 어미로부터 먹이를 독차지 하며 자란다. 오묘한 자연의 섭리라 하지만 보면 볼수록 섬뜩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탁란은 인간세상의 일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함이 있다.

한·EU FTA가 국회에서 결국 처리 됐다. 한나라의 농업을 남의 손에 맡기자고 덤벼드는 것이다. 농업이 경제학적으로 가치가 적다고 그래서 경쟁력이 없다고 치자. 그래도 이 땅 수천년을 이어준 명줄이며 누천년의 문화를 만들며 정체성을 이루어 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으며 누군가 농사를 지으며 이어가야한다. 그런 농업을 선진국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식민지가 되겠다고 나서는 것과 같다. 농민들이 살길이 막막하니 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짧은 안목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모두가 앵두나무 우물 버리고 호미자루고 괭이 자루고 내던지고 도시로 나가버리면 우리의 삶을 통째로 버리는 것이다.

탁란이 얼마나 비인간 적인가. 한 가지 농산물이 들어오면 그 농사는 굴러 떨어진 알이 되고 만다. 그다음은 또 다른 농산물이 그 꼴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다. 소쩍새 울음소리에 무너져가는 내 몸뚱이 인 듯 농사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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