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의존 농업 더 이상 대안 될 수 없어”

전남 장흥군 장평화훼작목반

  • 입력 2011.05.11 10:23
  • 기자명 최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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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남짓 된 장평화훼작목반(반장 김현철)은 변해가는 한국의 농업구조와 닮았다. 작목반 구성원도 처음 구성당시 보다 많이 줄어 현재는 12명 정도(장흥군농민회 회원들로 구성, 전체 2만5천평)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꿈을 잃지 않고 현장에서 희망을 구상해가고 있었다.

장평화훼작목반을 처음 구성할 1996년 당시에는 공동생산, 공동선별, 공동출하까지 할 정도로 원칙을 세우고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작목반원들의 탈퇴, 카네이션 가격 하락 등 경제적 이유로 인해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카네이션 농사가 정식 후 수확까지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자기자본이 튼튼하게 받쳐 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많은 농민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중도이탈 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기름 값 등이 서서히 올랐고, 모종 값이 비싸 카네이션 농사를 많은 농민들이 포기했다.

장평화훼작목반의 A 씨는 “카네이션 값이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싸다”며 “20년 전까지만 해도 카네이션 농사를 지으면 광주시내에 아파트를 산다고 했는데 지금은 꿈같은 소리다. 올해 난 3천만원 적자를 봤다”고 토로했다.

국화와 장미는 국내 시장성이 있어 농촌진흥청에서 국산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네덜란드나 스웨덴에서 모종을 수입하는 카네이션은 전체 생산비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 노형태 씨가 카네이션을 수확하고 있다.

 

저온성 작물인 카네이션은 장흥군 장평면과 기온 특성이 잘 맞아 많은 농민들이 선정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농협의 도움이 없이 유지하기 어려웠던 농민들은 빚더미에 앉고 파산신청을 한 농민도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구성원인 B 씨는 “2억원 가까운 빚이 있어 지난해에 파산신청을 했다”며 “기름이 사용되는 농업은 이제 더 이상 짓기 어렵다”라고 비관했다. 그는 상황이 이러하자 장흥지역에서는 카네이션이 사양 산업이 되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장평화훼작목반이 서서히 무너져 가는 길만 걷지 않았다.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물량이 적었고, 냉장보관시스템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카네이션 한단에 2만원을 육박할 정도였으니 재미가 쏠쏠 했다는 것.

하지만 현재 카네이션 품종 가운데 스탠다드 계통(대륜)은 60% 이상이 중국산이라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특히 5월 국내에서 가장 소비가 많은 대륜품종은 거의 중국산이라는 것.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어 국내에서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11년간 카네이션 농사를 지었다고 소개한 C 씨는 “심지어 가격이 좋지 않으면 수확을 하지 않는다. 보통 카네이션 농사짓는 사람이 다 그렇다. 1단에 2천원 정도 나오면 수확해서 출하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버린다. 그런 것 까지 감안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그는 “미쳐버릴 것 같다. 밤에 잠을 잘 수 없다”며 “농민회 회원들 중 카네이션 농사지은 사람들은 거의 다 중도포기 했다. 향후 몇 년 안에는 작목반원들도 크게 줄어 4~5명 정도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처음 작목반을 구성할 때는 현장에서 대안을 만들어 보고자, 또 그렇게 하자고 농민회 회원들이 뜻을 모아 시작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 농민 C 씨는 “기름을 사용하는 농사는 이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작목반 구성원인 노형태 씨는 “카네이션 농사를 중도에 포기한 농민들이 막노동을 하고 있거나 고물상을 하고 있다. 이는 농민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것”이라며 “농민회 활동가가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편 장평화훼작목반의 일부 구성원은 카네이션 농사를 대신해 기름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채소농사로 전환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석유 의존성 농업에서 탈피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장평화훼작목반 농민들은 새로운 도전으로 희망을 일구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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